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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하지 않아 더 로맨틱한 로맨틱 인디아

gowooni1 2009. 7. 18. 18:28

 

 

 

로맨틱 인디아

저자 채유희  
출판사 달   발간일 2009.01.02
책소개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나라에서 로맨틱한 날들을 꿈꾸다! 로맨틱하게 인디아에 빠진 이야기~ 『로맨...

 

나에게는 여행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습관이 두개 있다. 여러 가지를 적용 해보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이 두 가지 방법에 대해서만큼은 절대적인 신뢰가 생겨서 습관으로 못박아 두었다. 그 중 하나는 여행지에서 일기를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기를 읽는 것이다. 첫 번째 습관이야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하고 있고 설령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습관이라 치지만 두 번째 습관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여행지에 왔으면 현재 온 곳을 즐겨야지 왜 하필이면 다른 사람이 다른 곳을 가서 쓴 여행기를 읽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다른 사람이 다른 곳을 다니며 쓴 여행기를 읽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동해에 놀러 온 내가 서해에 놀러 간 친구와 서로의 눈 앞에 펼쳐진 각기 다른 풍경을 자랑하며 전화로 통화하는 기분이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지만 여행이라는 기본적인 행위를 공유하고 있는 여행자들은 동료 의식을 느낀다. 여행자들은 서로 궁금한 게 많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호기심이 동하는 거다. 그러다가 서로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며 재미를 증가시킬 수도 있고 각기 다른 느낌을 공유하며 깨달음을 배로 넓힐 수도 있다.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을 넓히는 것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특권이다.

 

잘 편집된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은 직접 여행을 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 글과 사진, 그림이라는 것은 그것을 창조해낸 한 개인의 눈을 통해 아름답고 정교하게 필터링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직접 여행했을 때 느끼는 현실적 어려움이나 구질구질한 감정들 까지도 즐거운 여행지의 추억으로 미화된다. 그렇게 예쁘게 치장된 여행기를 읽는 것은 즐겁다. 내가 생각한 여행기의 효능 및 효과는 다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 쉽게 여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을 준다. 둘, 여행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떠나고자 하는 지역의 정보를 제공한다. 셋, 쉽게 여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당장 그곳에 달려가고픈 충동과 용기를 부여한다.

 

이상적인 여행기로서는 아무래도 세번째 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다. 쉽게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떠날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면 된다. 이런 조건에 들어 맞으려면 웬만큼 많은 사람들이 쉽게 다녀오는 여행지는 자격 박탈이다. 쉽게 여행을 하지 못하는 곳이어야 그 메리트가 더욱 증대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역적 조건은 부자인 나라보다 치안과 교통이 빈약하기 그지 없는 가난한 나라라 제격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사람들에게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아니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요상하게 비꼬인 환상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는 위에 내가 제시한 여러 조건에 부합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필터링을 통해 느긋한 나라, 영적인 나라, 요가와 부처의 나라, 아슈람의 나라, 성스러운 갠지스 강이 흐르는 나라, 평화의 나라, 비폭력 무살생 간디의 아힘사의 나라 등등 그 미화가 극에 달한 곳이 바로 인도다. 하지만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더러운 도시, 게으른 나라,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나라, 냄새 나는 사람들, 부랑자와 거지들, 시체가 떠다니는 갠지스 강 등등 인도에 하루만 발을 들여 놓은 사람들은 전부 그들이 지금껏 가지고 있던 환상은 진정 완벽한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이번 여행 중에 읽은 책은 인도에 다녀온 채유희라는 사람의 여행기 '로맨틱 인디아'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즐거웠다. 여행 중에 다른 곳을 여행하는 시간적 효율성을 증대시켰고 그녀와 함께 인도에 대한 환상을 조금 많이 깨뜨렸다. 그러면서도 쉽게 여행할 수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픈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으며 깨진 환상의 자리에는 조금 더 현실적인 환상이 자리 잡았다. 그녀의 말, 사진, 그림으로서의 인도가 아니라 나의 말, 사진, 그림으로서의 인도를 다시 한 번 창조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