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자유롭게 표류하며 근원으로 회귀하는 황금 물고기

gowooni1 2009. 7. 2. 17:04

 

 

 

황금 물고기

저자 르 클레지오  역자 최수철  
출판사 문학동네   발간일 1998.01.30
책소개 물고기처럼 순진무구한 천진성과 강한 생명력을 지닌 한 소녀의 역경에 찬 성장기를 그린 프랑스 작가의...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는 여러가지 면에서 황석영의 바리데기와 이미지가 겹친다. 남성이고 문학사에서 거장이라는 위치를 차지한 사람들이 자신들과 정 반대의 성姓인 여성, 그것도 어린 여자 아이의 성장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과 보통 여자 아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열악한 지역에서 태어나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여자 아이라는 점, 그리고 전세계를 무대로 하여 바람처럼 흘러가는 파란만장한 주인공의 인생을 통해 세상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황금 물고기에서는 주인공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흑인 여자 아이고, 바리데기에서는 북한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다. 또 황금 물고기는 1997년 작품이고 바리데기는 2007년 작품으로 두 소설 간에는 약 10년 간의 갭이 있다. 이 말이 황석영이 르 클레지오의 경향을 모방했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고, 어느 정도 문학적으로 경력을 쌓은 거장들에게는 이런 경향의 작품을 써서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심리적 패턴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어렴풋한 추측이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주인공 라일라가 매우 어린 나이에 납치를 당하는 것으로 하여 이야기는 시작된다. 납치를 당하여 자신이 태어난 곳과 점점 멀어지면서 그녀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이 정해진다. 그 방향이란 결국 고향으로의 회귀이지만 그녀가 나중에 아프리카로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이 바로 그녀를 자라게 하는 양분이고 인생이다. 아랍계 국가, 프랑스, 미국을 거치면서 많은 일을 당하고 겪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받고 피해도 받는다. 흑인 여자라는 라일라의 삶을 우리가 보편적으로 가진 편견에 약간 기대어 생각해볼때 결코 호락호락한 세상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편견은 안쓰럽지만 대체로 일치한다.

 

라일라의 삶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삶은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다. 납치당해 팔려갔던 집의 며느리에게서 탈출하였을 때 라일라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유만큼은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녀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그녀가 가진 것은 젊음에서 오는 무한한 시간이다. 자신이 자유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심한만큼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도 빼앗지 않는다. 세상은 언제나 그를 가두고 구속하고 범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지만 타고난 생기와 활력으로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그녀는 타인에게, 세상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도 항상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분노와 혐오를 느끼며 세상을 표류하지만 어느 순간 라일라는 깨닫는다. 자신이 이 세상을 표류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자신의 힘 덕분이 아니라 그녀를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을 아무런 보상없이 세상에 내놓을 줄 아는 마음가짐도 배우게 된다. 이렇게 성숙한 그녀가 드디어 자신의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자신의 고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곳에서 늙어가는 한 노파의 눈을 보았을 때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표류도 끝났으며 더이상 어느 곳에 가지 않아도 됨을 느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

(1940~)

 

르 클레지오는 영국인과 프랑스인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이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어(압도적으로 많았던 식민지에서) 실망한 나머지 자신의 작가 언어를 프랑스어로 선택했다. 억압을 혐오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클레지오는 자연과 친숙한 삶을 살고 세상의 여러 곳을 여행하며 자신의 몸으로 직접 자유로운 삶의 표본을 보여준다. 자신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사교계나 대중과 멀리 떨어져 스스로를 유배하며 자신만의 친자연적인 삶을 구축하는 그가 있기 때문에, 과시욕이라고는 전혀 없고 자기의 자유에만 집중하는 주인공을 만들어 낸다. 뼛속까지 거장인 그는 비밀스러운 작가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비밀스러움과 고상함 때문에 더욱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