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장외인간들의 따뜻한 드라마, 날아라, 잡상인

gowooni1 2009. 6. 30. 10:35

 

 

 

잡상인의 잡雜자는 단어의 품격을 한단계 저하시킨다. 낮은 품격의 이 단어에서 우리는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지하철에서 우리의 귀를 시끄럽게 만들고 시선처리를 곤란하게 만들며 무관심의 연기를 강요한다. 어쩌다 잡상인들로부터 구입한 물건들은 하나같이 하자가 있어 쓰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처음부터 잡상인에 대한 직업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잡상인들은 사회에서 밀리고 밀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장외인간들이다.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한다. 별로 좋지 않은 물건에 대해 허풍을 떨어야 한다. 사람들의 무관심을 견뎌내야 한다. 물건과 함께 수치심도 팔아야 한다. 여기서 모자라 단속반까지 피해야 한다.

 

올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 '날아라 잡상인'은 이런 그들의 세계를 그렸다. 잡상인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등장인물은 조금씩 사회에서 연결고리를 잃은 '장외인간'들이다. 연극계와 개그계에서 퇴출당하고 벌이가 없어 지하철 잡상인 계에 입문한 꽃미남 철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미혼모 수지, 듣고 말하지 못하는 것에다 사고로 눈까지 안보이는 효철, 그런 효철의 약혼녀 지효, 구린내의 어원을 상기시켜준 노숙자 고려인.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은 밑바닥 인생을 사는 그들이 엮어 나가는 이야기다.

 

열심히 노력하여 개그계에 입문했지만 한 코너에서 대사 한마디 하고 한달만에 퇴출당하고, 더불어 자신의 아이이어까지 동료에게 빼앗긴 철이는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할머니 조지아 여사의 권고로 잡상인계에 들어간다. 조지아 여사의 애인 미스터 리는 잡상인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거물이다. 그에게 뒤따르는 전설은 잡상인으로 돈을 벌어 서울의 금싸라기 땅에 고층 빌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를 사부로 삼은 철이는 미스터 리를 따라 다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재주가 없다.

 

홀로 지하철을 돌던 중 철이는 배가 부른 미혼모 수지를 만나 좋아하게 되고, 몇 번 만나 친해진 후로는 수지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수지의 집에는 헬렌 켈러처럼 삼중고를 겪고 있는 효철과 그의 약혼녀 지효가 함께 살고 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들에게 선입견을 가졌던 철이는 그들이야말로 마음이 가장 넉넉하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임을 알게된다.

 

날아라 잡상인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작가는 따스한 눈빛으로 장외인간들의 파이팅을 외치고 있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뚜렷한 인생역전은 없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한방에 홈런하는 경우는 극히 적으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변화하게 될 뿐이다. 수지는 여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되지도 못하는 동화 삽입 그림을 그리고, 철이는 수백번씩 떨어지는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조금 나아진 것이 있다면 수지에게는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마음씨 따듯한 철이라는 아기 아빠가 생겼고 철이에게는 아주 작은 대학로 극단의 아주 작은 역할 스카웃을 제의 받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삶은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편견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최하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이 세상 어떤 계층보다도 따듯하고 풍요롭다. 개개인을 소유하려는 사랑이 아니라 전인류적인 인간애를 지닌 사람들은 아름다운 눈을 가질수밖에 없다. 잔잔한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고 났을 때 등장인물들의 예쁜 마음이 전염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맑고 겸손하고 순수한 눈을 (잠시나마) 갖게된 자신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