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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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재미와 상업성을 많이 추구하는 세계문학상은 재미는 있지만 작품의 무게적 측면에서는 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아니, 갸웃거려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번년도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에서는 무게도 확실히 포함되었다. 물론 재미와 감동은 당연한 말씀이다.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각자 말하지 못할 역사가 있다. 그들이 병을 얻게 되었을 과거는 유전이든, 정신적 쇼크에 의한 병이든 감당하지 못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좌천이든 가지가지이다. 그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 역시 슬픈 역사의 집합소이며 따라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인간 취급을 받는 곳이다.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때로는 동물보다 더한 정신적 물리적 취급을 당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우울증에 가위에 대한 공포증까지 앓고 있는 25살의 남자 이수명은 정신병이 있기 때문에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는 사람 중의 하나이고 이 소설의 화자다. 그런 반면 정신병원에 갇혀서 서서히 미쳐가는 자들도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인데 주인공 이수명과 같은 방을 쓰는 동갑내기 남자 류승민이 그런 부류다. 그는 혼외자라는 서얼적 차별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집안 정치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힌 재벌의 손자다.
그들이 처음 수리정신병원에서 만나던 날은 가축이하의 취급을 받던 최악의 날이다.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그곳에서 개인의 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에 주인공은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몸상태와 상극인 약물치료를 받아야 했는데도 그에 대한 아무런 사과나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런 부조리한 대접이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인간적인 대접이 어울리지 않는 곳, 공인된 사설 감옥이기 때문이다.
가위공포증 때문에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한 주인공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그 머리 덕분이 '미스 리' 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머리 때문에 정신병자들보다 더 정신에 의심이 가는 사디스트 보호사 점박이에게 언제나 호되게 물리적 폭력을 견뎌야만 한다. 그런 미스 리에게 류승민은 유일하게 점박이를 호되게 욕봐주는 백마 탄 왕자다. 류승민은 언제나 병원에서 탈출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 그에게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평생 조용히 정신병원에서 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주는 것 뿐이다. 하지만 류승민에게는 시간이 없으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해야할 일이 있다.
자기 생을 온 정열을 불사르며 직시해 살아온 승민을 보며 항상 인생으로부터 도망만 치던 주인공은 애증이 교차한다.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 없이 살아온 주인공은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정신병원에서 늙어 죽기만 바랄 뿐인데 승민을 보고 있으면 그런 자신의 삶이 부정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외부 사회에서도 부정되던 삶이 이곳에서조차 부정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임을 잘 알면서도 수치심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마저 없다.
멀쩡한 사람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남녀간의 로맨스나 스펙터클한 액션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화자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25살짜리 남자고 등장인물은 온통 '비정상적'인 인물들 뿐이다. 그런중에도 눈물과 감동과 가슴벅찬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억압당한 정신병자들의 가축같은 삶에서도 인간사회에서조차 보기 드문 인정과 감정의 교류가 있었다.
화자의 영향이겠지만, 질병이라는 대중들이 정해놓은 기준이 그 기준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얼마나 바보로 만들어 놓을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하는 동안 정신병원 사람들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한을 풀어달라'고. 그들이 말하는 한이 이런 것이었을까? 기준미달이라 가축취급을 받는 자기네들의 처지를 만인들에게 이해시켜달라는?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 바는 뭐였을까?
사회적 부조리는 언제나 부조리한 상태에서 끝이 나고 고통받은 사람들은 세상을 뒤집지 못한채 개인적 차원에서 승화시킬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세상은 내가 뒤집으면 뒤집히는 거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두 남자의 결말은 사회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보잘것 없지만 각자의 삶에서는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던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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