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바리데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

gowooni1 2009. 6. 8. 00:30

 

 

 

바리데기

저자 황석영  
출판사 창비   발간일 2007.07.31
책소개 중국대륙과 대양을 건너 런던에 정착한 탈북소녀 '바리'의 여정을 그린 황석영 신작소설. 작가는 소설...

 

바리데기에는 세상 물정을 다른 누구보다 많이 경험해본 작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어린 사람들이 들어본 적이 없거나 생각하기 힘든 풍부한 어휘와 체험과 공간과 인물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생각을 강요하거나 깨달음을 설명하는 그런 절차는 없다. 저자는 단지 보여주기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곳곳의 현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아직도 남아선호 풍습때문에 여자 아이들을 여섯이나 낳다가 마지막 아이를 갖다 버리고, 산에 내다 버린 아이를 집에서 기르던 개가 데려와 살리고, 식량 부족으로 사람들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풍경의 도입부는 우리네 부모 또는 조부모의 시대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한창 오래전 시대가 배경인 줄 착각했는데 알고보니 주인공 바리는 고작해야 80년대에 북한의 두만강 국경 지역에서 태어난 한 여자 아이다. 동물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귀신이나 기를 볼 줄 아는 바리의 인생 10 여년은 파란만장하다.

 

대기근으로 더 이상 북한땅에서 살 수 없는 바리는 탈북을 하여 중국에 가서 살다, 영국으로 밀입국을 하고 거기서 파키스탄 남자와 결혼을 한다. 아이를 낳지만 한때는 친언니처럼 믿었던 샹이 바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죽이고 돈을 가지고 도주한다. 샹을 증오하고 저주하지만 집에서 거리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눈물을 흘린다. 9.11 테러로 시작된 이슬람의 전쟁 지역에 남편 알리가 구류되고 사람의 혼을 느끼는 바리는 자신의 남편이 어딘가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알리는 무사히 살아 돌아오고 런던에 다시 안정된 삶을 꾸리는 어느 날 런던 지하철 테러가 발생하고 그 근처에 있던 알리와 바리는 그 처참한 광경을 뒤로한 채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영매 기질이 있는 한 어린 소녀가 어른 여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시간적 배경으로, 북한에서 중국 영국이라는 대륙을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여주인공의 눈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세태를 보여준 바리데기는 단순히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소설에 우리 시대의 문제점을 녹여내는 거장의 글이 단지 자신의 이야기만 나열하는 것일 수가 없다. 바리가 북한에서 도주하게 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는 열악한 북한의 식량 사정이나 삶의 질이 터무니없이 낮은 북한 주민의 실생활을 보여준다. 풍요에 젖은 우리가 바리의 이야기를 보면서 도저히 동시대인의 삶이라 믿기 힘들었던만큼 우리는 바로 옆에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의 어려움에 문제 의식이 없다.

 

바리의 생활이 우리 나라를 벗어나면서 저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문제는 전세계적인 차원으로 바뀐다. 알라를 믿는 무슬림의 가족과 결혼을 하고 9.11 테러로 인해 발발한 중동지역 전쟁 문제에 미약하게 개입된 가족의 문제에서 독자는 종교적 문제 그 이상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거시적인 문제를 떠나 미시적인 문제도 존재하는데 그건 불법체류나 밀입국한 자들의 어쩔수 없이 억울한 현실을 말한다. 보다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큰 마음을 품고 왔을 그들이지만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어쩌면 더 몰락해버리기 쉬운 불법체류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생활환경을 보면서 저자가 사회적으로 불리한 약자들의 위치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도 느낄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면 그건 숙제처럼 머리아픈, 결코 기꺼운 일이 아닐 것이니 그런 것들은 잠깐 접어두고 이 소설에서 가장 감탄했던 것 하나만 말하자면 지극히 형식적인 측면에서이다. 북한이나 조선족들의 말을 아주 실감나게 표현해 내고, 별로 접해보기 힘든 단어들을 넘치도록 구사하여 머릿속에 하나의 영상을 재현해 내는 힘이 강한 저자의 소설 속에서 감출래야 감출수 없는 거장의 포스를 실감할 수 있다. 그건 그만큼의 시간을 온전히 체내에 축적해온 사람만이 가질수 있는 포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