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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미성숙하고 안주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고찰

gowooni1 2009. 6. 11. 03:08

 

 

 

오 자히르

저자 파울로 코엘료  역자 최정수  
출판사 문학동네   발간일 2005.07.12
책소개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장편소설. 꿈을 잃고 현실에 안주했던 '나'에게 생의 의미...

 

만약 당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생각이란 게,

1. 불꽃과 같은 열정으로 보통 일년 육개월 정도의 유통기간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후는 정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는 것

2. 결혼해서 권태기에 이르렀을 때쯤에는 아이를 낳아 관계의 위태함을 눈감아 버리고 생계유지 또는 육아에 온통 정신을 쏟다보면 그럭저럭 유지되는 것

3. 결혼하고 아이낳고 일상적인 생활의 안정을 찾으면 서로 공동된 생활을 추구하는 동지로서 암묵적으로 다른 이성친구를 사귀어도 묵인해주는 것

4. 그러다 나이가 들고 늙으면 서로를 바라보는게 아니라 자식들에게 의지하여 살다 생을 마감하는 것.

요약하자면 사랑은 서로만을 바라보며 의지하고 행복해하는 시간은 처음의 일년 육개월 뿐인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할말이 없다.

 

하지만 이와 정 반대되는 생각 즉,

1. 사랑은 처음의 열정을 서로 길게 유지하고 존중하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 상대를 최대한 배려하는 마음을 항상 잃지 않는 것.

2.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대화를 통해 공통의 목적을 추구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미래를 살아가는 것.

3. 내 일이 바쁘기때문에 상대가 이해해줄거야 라는 이기적인 믿음보다는 상대가 이해하기도 전에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

4.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증가시키기 위해 아이를 낳고 만약 아이가 상대를 사랑하고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낳지 않을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를 읽어보라고 권하겠다.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사람이라면 지녀야하는 미덕이지만 그것을 지닌 자는 극히 드물다. 그 미덕을 지닌 자는 인기의 성쇠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자는 인기가 흥할 땐 교만하고 쇠할 땐 비굴하고 타락한다. 그 미덕이란 바로 의연함이다. 의연함이라는 단어가 전부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나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않는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미덕임에는 틀림없다.

 

작가는 의연하지 못했다. 자신이 영적인 깨달음을 설파하는 책을 써서 세계적인 작가 대열에 올랐는데에도 자신이 책을 통해 말하는 이상적인 생활을 살고 있지 못했다. 그는 주변에 따라 변했고 따라서 그의 옆에서 언제나 한결같이 있어주던 아내는 괴로워했다. 아내는 언제나 남편이 보다 진정한 자신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고 도와주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그런 아내의 존재를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했다. 아내는 변해가는 자신들의 관계를 고치려고 수많은 밤을 대화로 치료해보려 했고 남편은 매번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은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 대화합시다'였다. 그래서 어느날 더 이상 그들의 관계에 참을수 없는 지경이 왔을 때 그의 아내는 떠났다.

 

작가는 이 상황을 아주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비유했다. 불이 난 집에서 막 소방을 하고 나온 소방관 두 명이 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검댕이 많이 묻었고 다른 사람은 먼지 하나 묻은 것 없이 하얬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둘 중 어떤 사람이 세수를 할까? 보통은 얼굴에 검댕이 많이 묻은 사람이 세수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검댕이 많이 묻은 사람은 얼굴이 하얀 사람을 보고 자신의 얼굴도 깨끗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깨끗한 사람은 상대의 검은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도 지저분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 세수를 하는 사람은 얼굴이 하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검댕이 많이 묻은 사람으로, 떠나가버린 아내를 얼굴이 깨끗한 사람으로 비유했다.

 

자신은 한결같이 하얀 얼굴,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자신을 지지해주는 아내를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눈부시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지내왔지만, 언제부턴가 정작 자신은 그의 아내를 일상의 한부분, 집이나 가구, 애완동물처럼 생활의 일부로 생각했고 무덤덤해졌다. 그것이 남들처럼-어떻게 사람이 언제나 똑같은 열정으로 사랑할 수 있냐고 반문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냐고 생각했다. 오히려 얼굴이 하얀 아내가 검은 얼굴의 남편을 보면서 자신이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기에 그의 아내의 영혼은 너무 환했고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아내 에스테르는 모든 것-유명하고 돈을 많이 버는 작가의 아내이자 4개국어를 구사하고 유명 신문사의 기자라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찾기 위해 사라진 것이다.

 

오 자히르는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내를 찾아가는 작가 남편의 깨달음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작품의 첫 부분에 실제로 코엘료는 이 책을 자신의 아내 크리스티나에게 바친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유명 작가가 된 이후 소중한 것-아내-를 잃어버렸고, 그 소중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깨닫기 위해 그에게 주어진 시련을 극복해가는 이야기다. 소중한 것은 잃어버렸을 때 그 가치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그는 가장 소중한 아내를 잃어버리고 자존심에 상처받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약하고 못났던 점들을 순수하게 인정하고 아내는 물론 의연함을 잃어버린 자신까지 되찾게 된다.

 

자히르가 무슨 말인지 궁금한 사람을 위해 설명을 하고 싶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아직 그것이 뭔지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없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남들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오 자히르를 읽다보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자히르가 뭔지 어렴풋하게 실마리는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책의 첫 장에 쓰여 있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 따르면 '자히르'는 이슬람 전통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18세기경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랍어로 자히르는, 눈에 보이며, 실제로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일단 그것과 접하게 되면 서서히 우리의 사고를 점령해나가 결국 다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어떤 사물 혹은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신성(神聖)일수도, 광기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