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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 - 존 코팅햄

gowooni1 2009. 5. 17. 01:51

 

 

 

삶의 의미

저자 존 코팅햄  역자 강혜원  
출판사 동문선   발간일 2005.01.20
책소개 인간이 스스로 제기하는 가장 흥미롭고 어려운 질문인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는...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를 쓴다.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도, 사회에서 명예를 얻으려 하는 것도 전부 의미 찾기의 일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쯤 없어진다고 해서 타격받지 않고 돌아가는 사회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마음을 금할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나 열심히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내일 당장 자신이 죽는다해도 멀쩡하게 돌아갈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좌절만 하다가는 이도 저도 안된다. 인류가 탄생하기 전에도 수억년의 시간이 있었고 언젠가 인류가 멸명한다고 해도 그 이후로도 수억년의 시간이 흐를 것이다. 엄청난 무無의 시간 사이에 잠깐 반짝하고 살다가는 인간의 삶이란 우주적으로 보았을 때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 말이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개인적인 존재이다. 우주에게 있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우리 개인에게 별로 의미가 없다. 내가 있고 나서야 이 우주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므로 삶의 의미란 결국 극도로 개인적인 것이다. 내게 의미가 있는 삶만이 의미가 있다.

 

의미는 두가지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하나는 개인적 측면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타인의 측면이다. 내게 의미가 있는 삶만이 의미가 있다고 해놓고, 타인의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모순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각자의 소행성이 아니라 공동의 행성이기 때문이다.

 

먼저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자. 어떤 개인이 만약 테니스를 즐긴다면, 즐기게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순전히 테니스를 치고 있는 그 순간을 즐기거나 또는 상대에게 이기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거나. 만약 테니스라는 스포츠를 하는 그 과정, 자신의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순간과 날아오는 공을 정확하게 받아내는 데에서 느끼는 희열을 즐긴다면 그 사람은 정말 테니스를 사랑하고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를 꺾고 이기는 데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테니스를 즐긴다기 보다는 경쟁을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경쟁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테니스가 아닌 다른 스포츠에서도 충분히 기쁨을 느낄 수 있으므로,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진정 테니스를 즐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둘다 의미는 있다.

 

타인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는 데에서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을 진정 의미있는 삶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나치 치하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했던 수용소에서 근무한 사람들은 분명 자신들의 일을 하면서 스스로가 '성실'하고 임무에 '충실'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의 임무였고, 수천년동안 사람들은 각자가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있었을지 몰라도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삶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고려할 때에는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지, 적어도 해를 끼치지는 않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존 코팅햄의 [삶의 의미]에서는 여기에 영적인 차원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종교적 차원에서 구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신이 죽은 이후 더이상 종교는 보편적 대답을 제공할 수 없다.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를 전부 납득시킬수 있는 답이 필요하다. 저자는 자신의 저서가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전부를 만족시킬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양자를 아우를수 있는 답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역시 지나치게 삶의 의미를 찾는데 종교에서 많은 전제를 가져다 쓰고 있으며, 과학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아도 종교만큼 큰 의미를 가진다고는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과학이 종교과 양립할 수는 있어도 종교가 지닌 교리의 힘을 약화시킬수는 없단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전제가 지극히 한정적이고 편협적이며, 중도를 지키려 노력했다 해도 결국 편파적이니 저자의 결론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하나님이 없는 우주에서도 우리 인간 본질의 꽃피움을 지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의미있다고 보면 안되느냐고 설파하다가도, 결국 인간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할 수 없으므로 신앙이 선사하는 믿음과 소망의 빛 안에서 영성 훈련을 배양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종교라는 말만 쏙 뺀 채 종교적 개념과 언어들을 교묘하게 갖다붙인 결론은 결국 삶의 의미는 신앙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 저자의 결론을 반대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무신론자까지 납득할 수 있는 이론을 세웠다는 말을 하지 말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이 말만은 마음에 든다.  

삶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 감사하게도 진정 삶에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