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철학*문사철100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 피에르 쌍소

gowooni1 2009. 5. 20. 19:06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저자 피에르 쌍소  역자 김주경  
출판사 동문선   발간일 2000.06.20
책소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피에르 쌍소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허둥지둥 바쁘게 움직이는 생활에서 결연...

가시적인 것만 중시하는 현대 사회는 눈에 직접 보이는 활동만 하기를 강요한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고 말을 유창하게 잘 해야하며 보다 많은 성과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린(느리게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어눌하다거나 답답하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산다는 것이 오히려 더 불가능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전부 빠르고 싹싹하게 행동하기를 강요한다. 개성의 획일화는 행동은 물론 성격까지 획일화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느린(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정말 아둔하다거나 민첩하지 못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행동으로 빠릿한 사람들보다 더 명민한 정신을 가지고 매 순간을 생각하고 느끼며 살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는 어떤 거대한 우주를 구상중인지도 모르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이 눈이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게으른 사람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건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피곤하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처음 읽은 것은 대학교 2학년때였다. 그때나, 7년이 지난 지금이나 이런 제목에 변함없이 이끌린다는 점을 봤을 때 나 역시 느리게 사는 삶을 선호하는 사람중의 한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다름을 확실히 느낄수 있는 것은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 때문이다. 아마 대학교 2학년때의 나는 충분히 느리게 살고 있었고, 빠르게 산다는 것이 뭔지 잘 몰랐던 모양이다. 그때는 분명 이 책을 읽고도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빠르게 산다는 것이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종류의 삶임을 확실히 깨달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나는 분명 그때보다는 생각할 것이 훨씬 많아졌다. 여러 종류의 길을 거치고 시간을 들여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는데, 사람의 본질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며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본연의 성질에 맞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별로 달갑지 않은 기억이나 경험조차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항상 달콤하고 유쾌한 경험만을 추구했다면 인간으로서 느낄수 있는, 슬프거나 화가 나는 감정을 경험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은 안 좋은 감정들을 그저 안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 그 감정까지도 소중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감정들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슬픈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거고, 슬픔을 다룬 문학 예술 작품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감정들을 겪고 나서 얻는 마음의 평정이나 안온함을 모를 것이며 그것을 얻기까지 스스로의 내부에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모를 것이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강해지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는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시간 전부가 얼마나 소중하고 든든한 자기만의 재산인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온전한 시간을 확보하며 사는, 남들이 봤을 때 느리게 보일수도 있는 삶을 선호하는 것이다.

 

온전한 시간을 늘릴수록,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커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커질수록 과시욕이 없어짐을 느낀다. 나는 과시욕이 없다고는 결코 말할수 없는 사람이다. 똑똑하고 싶고, 부자로 살고 싶고, 좋은 차를 갖고 싶고, 멋진 집을 갖고 싶고, 언제나 젊고 예쁜 상태로 살고 싶다. 그러나 천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항상 궁극적인 목적을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모든 내 욕망에 '왜?'라는 질문을 한다. 왜 똑똑하고 싶고, 왜 부자로 살고 싶으며, 왜 좋은 집과 차를 갖고 싶은지 차근차근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모든 것은 과시욕이었다. 그건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부자처럼 대접받고 싶었으며,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지길 원했던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런 과시욕들이 완전히 없어지지 못한 것 같지만, '과시욕'이라는 개념을 깨닫게 된 그 순간 조금씩 이것에서 자신을 격리시켜야겠다는 의지가 싹텄다.

 

피에르 쌍소는 말한다. "만일 내가 스스로를 완전히 자유롭고 흠없는 존재로 이해한다면, 굳이 타인들을 굴복시키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을 것이다....또한 관대함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이며, 타인들과 평등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 그들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준다." 여기서 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보다 충만하게 들어섰을 때야 말로 과시욕이라는 자아의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겼다. 저자는 이를 위해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기술은 이런 것이다. 함부로 비판하지 말 것,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 것, 상황이 제공해 준 것들을 최대한 이용할 것, 사회 계층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을 비통한 질투의 시건으로 바라보지 말 것, 시도해 봤다는 자긍심을 갖기 전에 자신의 취향과 운명에 따라서 착실히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것 등이 그것이다.

 

글쎄, 여기서 내가 덧붙여보다면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이란 결국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버리는 기술'이 아닐까 싶다. 남들을 위하여, 혹은 부모나 가족을 위하여 얻고자 하는 욕심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뭐든지 과하면 나쁜 법이니까.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정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욕구였는지'를 살펴보고 그 답이 YES일때만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닌, 본연한 자신의 삶을 살고하 하는 사람들은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