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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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글을 잘 쓰려면 마음속에 착함과 진실됨이 담겨 있어야 한다. 다음은 글쓰기에 미쳐야 한다. 미친다는 것은 그것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매진한다는 것이다.글을 쓰되 그 글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해야 한다. 글을 써가는 과정을 즐기고, 쓴 다음 다시 읽어보고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았다면 그 글은 틀림없이 독자의 감동을 얻어낼 수 있는 좋은 글이 될 터이다.
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의 표지에 있는 글이다. 1938년생인 작가는 1968년 등단하여 약 40여년간 글을 써오면서 체득한 글쓰기에 대한 깨달음을 108가지로 정리하여 책을 내었다. 108가지란, 불교의 108번뇌에 해당하는 듯 하여, 마치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108 번뇌를 다 느껴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은 것을 체험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고뇌하고 절망해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나의 글을 읽을때, 글을 쓴 사람의 성품을 상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느낌표를 많이 섞어서 쓰는 사람의 글 속에는 글쓴이의 격정적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고, 간결하면서도 담담하게 쓴 글 속에서는 글쓴이의 정갈한 성품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한승원의 문체 속에서는 세상을 오래 살고 관조할 줄 아는 사람의 선비 같은 냄새가 난다. 어떤 문체가 옳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역시 달관한 자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밥 같은 문체가 좋다. 느낌표가 많이 들어간 글은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금방 질린다. 밥 같은 문체는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밥 같은 문체를 사용하여, 자신의 글쓴이에 대한 철학을 적고 그것에 대한 예문을 든다. 글을 잘 쓰는 실질적인 기술을 전한다기 보다는 글쓰는 사람이 지녀야 할 진실된 마음가짐에 대해 더 많이 알려준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다독 다작 다상량'의 자세가 요구된다. 이런 기본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다고 생각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을 보고 저자는 '목이 탄 개처럼 헤매지 말라'고 한다. 결국 지름길은 없으며 정도란 언제나 구불 구불 먼길을 돌아 모든 것을 거치는 길 뿐이라는 것이다.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 중, 앞의 3부는 글쓰는 이의 정신자세를 말하고 뒤의 3부는 실질적인 자세를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앞의 3부, 글쓴이의 정신적 자세나 마음가짐을 말한 부분에서 드러난다. 하나 하나의 경구같이 다가오는 이 글들은 글을 쓰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마음의 도리를 말한다. 저자가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글쓰는 것에 모든 것을 비유했지만 어느 분야에서건 제대로 '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고 자기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가령, '사랑하는 마음으로 써라' 또는 '글 쓰는 과정을 즐겨라', '푸지되 헤프지 않게 써라'. '5천권의 책을 읽고 만장의 글을 써라' 등등이 그것이다. 내가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라고 치자. 좋은 피아노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피아노 연주를 이 세상에서 최고로 사랑해야 한다.(사랑하는 마음으로 써라) 또 아무리 연습이 힘들고 고달파도 연습하는 그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글 쓰는 과정을 즐겨라). 또 자신의 감정이 격하다 하여 한 곡의 곡을 전부 포르테(강하게)로 연주하면 그건 단지 소음일 뿐이다. 약하게 칠 곳은 약하게 치고 강하게 칠 곳은 강하게 치는 강단과 감정 표현의 자제력이 요구된다(푸지되 헤프지 않게 써라). 그리고 너무 당연하여 설명하기도 귀찮지만, 다른 피아노 연주자들이 연주한 곡을 많이 듣고 자신도 자기만의 음색을 확립하여 자신만의 곡을 연주해내야 한다(5천권의 책을 읽고 만장의 글을 써라).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압축할 수 있는 자세는 바로 '사랑'이다. 자신이 걷고자 한 그 길을 미치도록 사랑한다면 저런 자세들은 매우 당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글쓰지 않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당연히 많은 글을 쓸 것이고, 그 과정을 즐길 것이며,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책을 쓸 것이고, 자신이 쓴 많은 글들을 보며 자제력이나 표현력을 한껏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관심가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나에 자신의 뜻을 두지 못한다.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이며 세상사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길을 거쳐 드디어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왔을때, 그리하여 하나의 길에 자신의 뜻을 두고 그것을 이룩해야 하는 나이에 도달했을 때에는 담담히 그것만을 사랑하고 그것에 미쳐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글쓰기건, 피아노건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를 보며 글쓰는 이로서의 마음가짐과 함께 된 사람이 되고픈 자의 마음가짐을 동시에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뒷 부분의 실용적인 글쓰기 지점에서는 앞부분보다 많은 감회를 얻지 못하였으니, 아마 그건 지나치게 평범하거나 또는 저자만큼 글을 써보지 않아 공감조차 하지 못하는 미약한 경지에 있는 내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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