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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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서 잠깐 생활한 적이 있다. 침대는 싱글 중에서도 초미니 싱글이고 그 침대 너비보다 약간 넓은 방 공간에 작은 옷장, 냉장고, 책상, 의자, 신발장이 빼곡히 있었다. 나는 그 좁은 방의 작은 침대에 누워서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살기가 너무 편했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면 주방에는 언제나 밥-밥은 특히 압력솥으로 한 것처럼 맛이 있었다-이 있었고 방바닥은 휴지로 닦아내면 항상 깨끗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내 방은 제일 끝방이었으므로 추울까봐 특별히 설치된 온풍기는 눅눅해지기 쉬운 빨래를 뽀송뽀송하게 말리기에도 그만이었다. 체구가 작은 나를 위해 맞춘 듯했던 침대에 누워서 '이렇게 완벽하게 나를 위한 공간을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 있다니 세상 참 살기 좋아졌네'하고 뿌듯해하며 책을 읽다 잠이 들곤 했다.
각 방에 에어컨도 다 있는, 설비가 꽤 좋은 곳이었으므로 타 고시원에 비해 가격은 비싼 편이었지만 그래도 서울에 위치한 원룸의 웬만한 월세보다야 쌌으므로 만족스러웠다. 가끔 친구들이 나의 생활을 물을때 '너무 좋다'고 하였더니 참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고시원 생활이 좋다니 참 별나다'라는 의미였을수도 있겠다. 하긴 일반인들의 눈빛으로는 그게 참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시원은 많은 참사의 현장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로서, 매스컴에서도 일반인에게 획일화된 부정적 이미지를 부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생각을 설득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였으므로 '대한민국 표류기'를 처음 읽을때 무척 반가웠다. '나처럼 고시원 생활을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 또 있네. 이 사람, 뭔가 좀 통하는구나.' 그런데 그건 첫부분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일종의 미끼 같은 거였다. 단지 그런 식으로 자신의 독립이 시작되었음을 풀어나가기 위한 소재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무튼 저자 허지웅은 고시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온전히 홀로 대한민국 표류를 시작한다.
책은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부분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두번째 부분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돌아가는 세태에 대한 이야기, 세번째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다. 시니컬한 문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읽다가 싫증이 날 수도 있으니 주의 요망. 저자 특유의 조직화 되지 않는 개성과, 그로 인해 레이더처럼 발달한 비판적인 시선은 두번째 부분에서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 고시원 생활을 '살기 좋아진 세상'이라며 시작하기에 상당히 긍정적인 시각을 지닌줄 알았더니 잘못 봤다. 저자는 마냥 긍정적인, 주위에 그저 수긍하는 착한 어린이는 아니었다는 말씀이다.
냉철하게 말하여 첫번째 부분,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들은 블로그에 포스팅할 수준의 글일 뿐이므로 조금 실망스럽다. 이렇게 짧은 단상들로 무슨 책을 냈나 싶어서 덮어버렸다. 그래도 받은 책이므로 리뷰는 해야겠는데 뭐라고 쓸까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를 훓었다. 나만 실망스러운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하나 클릭했는데 저자의 글솜씨에 반했다는 내용이어서 사뭇 놀랐다. 어찌 이런 짧은 문장력을 이리 높이 평가하는 건지, 혹시 뒷부분은 이 앞부분과는 좀 다른건가? 그래서 다시 책으로 돌아왔다. 역시 두번째 부분부터 확실히 달라진다.
두번째 부분은 대충 '대한민국 이명박 현정부에 대한 난도질'용 글이다. 매우 비판적이며 극도로 냉소적인 부분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자신만의 냉철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읽다보면 우리 사회가 마치 더이상 구제할 수 없을 정도인 것 같이 느껴지므로 가끔 쉬어주기를 권한다. 어쨌든 그런 날카로운 눈도 이 사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절대로 생성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존경한다. 이 두번째 부분과 나머지 세번째 부분인 영화평에서는 기자로서의 맛깔스러운 글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허지웅은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으로 기사나 비평을 쓰기에는 적당한 냉소주의, 적당한 문장력을 가졌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한번도 외국여행을 하지 않고 30년을 넘게 이 땅에서만 살아왔으면서도 이곳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말을 써서 책의 제목을 단 것을 보면, 저자는 자기 나름대로 이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터득했나보다.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자신만의 거리유지법을 확실히 정립한 저자가 무척이나 부럽다.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건 나름 어른으로서의 철학이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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