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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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은 거의 리뷰를 쓰지 않는다. 그 책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 책도 마찬가지이다. 두 경우의 공통점은, 그 메시지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한 가지로 정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역시 뭐라고 정리를 해야 좋을지 막막한 책이다.
500페이지에 약간 못미치는 '백년동안의 고독'은 온갖 장르를 혼합한 책이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사촌인 우르슬라 이구아랑의 결혼으로 그 기원이 시작되는데, 결투에서 친구의 목에 창을 꽂아 죽이고 죄책감에 남미의 한 지방에 정착하여 '마콘도'라는 마을을 세워 살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들로부터 약 7대의 자손들이 살아가면서 태어나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여차하면 스토리 전개 중심의 대하소설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죽었다가 살아나는 집시 멜키아데스, 죽었는데에도 우르슬라 눈에만 자주 나타나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홑이불을 널었던 화창한 날 하늘로 승천하는 미녀 레메디오스 등등 정상적인 세계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수도 없고 일어날수도 없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 또 대를 반복하면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아버지나 조부모의 이름을 물려받음과 동시에 그 운명도 거의 비슷하게 되물림받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기이함에서는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이를 문학계에선 '환상적 사실주의'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등장하면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특히 남녀관계를 철저한 작가의 시점(관찰자, 또는 적당한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그리는 것과, 너무 깊이 그 심리를 파헤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묘사하는 기법을 보면 로맨스 소설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많이 부족하니, 일일 드라마 같은 기분도 적당히 안겨준다. 모든 장르를 혼합한 기분을 독자에게 안겨준다는 것 자체만 보더라도 이 소설은 그 자체로 기묘한 분위기를 낳는다.
적도와 가까운 라틴 아메리카의 나라 중 하나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G.G 마르케스는 이 소설을 1960년대에 썼다. 그가 상상하고 이 소설의 배경이 되어준 마을 마콘도는 실제로 있었다고 하지만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은 전설적 존재라고 한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한 마을에 외국 자본 회사가 들어와 무자비하게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에 반항하는 노동자들을 전부 학살하면서도 정부 당국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쉬쉬하는 것에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침탈을 말한다. 또 남미의 근친상간적 결혼 때문에 결국 자멸하는 일족의 모습도 어느 정도는 있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 소설에 환타지성을 더하는 것 중 하나는 주요 인물들의 나이인데, 우르슬라도 100살을 넘게 살았던 것으로 묘사되고, 피네르 역시 150살 가량을 살다 가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부엔디아 일족의 흥망성쇠를 그린 이야기지만, 이 두 여인 특히 우르슬라가 거대한 축을 단단히 잡으며 스토리의 핵심 역할을 한다. 우르슬라로부터 시작하여 부엔디아 가족 마지막 아이를 낳은 아마란타 우르슬라로 끝나는 이 이야기의 구조만 보더라도 우르슬라가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이 가족이 굳건하게 생각했던 가치관, '과거는 결국 반복된다'는 것을 엿볼수 있다.
너무 급변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과거는 반복된다는 식의 숙명론을 받아들이기에는 익숙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미신적 믿음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사람이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해도 어느 정도 반복되는 인간의 삶을 느낄때가 종종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지 명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만약 이것이라면 분명 사양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런 메시지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등장인물, 많은 스토리가 있는 만큼 다양한 메시지를 곳곳에 뿌리고 있고,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독자를 가장 쓸쓸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작가로서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덤덤히 서술하였다는 것이며,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근친상간을 통해 멸망하는 부엔디아 가족의 몰락이 환상적 기법으로 인해 화려하고도 쓸쓸하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100여년이나 일가족의 둥지가 되어준 집이 폭풍에 의해 쓰러져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져 전설로 남는 모습을 영화처럼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낸 가르시아의 문학적 재능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제일 마지막 부분은 특히 독자의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한 영상을 통해 작품의 여운을 오래토록 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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