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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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없는 세상'은 프랑스 영화 감독 에릭 로샹의 데뷔작(1989) 이름이다. A world without pity. 그러니 여기에서의 동정이란 연민 정도로 해석된다.
영화화 된 '아내가 결혼했다'로 유명한 박현욱 작가의 '동정없는 세상'은 2001년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몇번씩이나 큰 소리내어 웃어본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무척 유쾌했다. 그러니 기분이 조금 우울하거나 즐거워지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미리 말해 둘 것은, 여기서의 동정이란 Pity가 아니다.
아직 성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는 고3 남학생이 주인공으로, 흔히 그 나이또래 남학생들이 그러하듯이 여기의 주인공도 오직 여자친구와 한번 자보는 것에 골몰한다. 공부도 별로 못하고 딱히 가진 꿈도 없이 오직 성적인 해소에만 집착하는 이 소년에게는 장점도 하나 있다.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주인공은 별로 이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별로 예쁘지는 않으나 공부도 잘하고 자기 앞가림 잘하는 여자친구 서영에게 항상 주눅이 드는 캐릭터다.
생각없고, 아는 것도 많이 없고, 관심사도 성적인 것 뿐인 주인공이 소설을 가볍게 만들어버리지만 반면에 아는 것 많고 이해심 깊은 엄마나 삼촌이 어른으로서 적절한 훈수를 두어 마음의 고삐를 잘 잡아주어서 무조건 가볍기만 한 소설의 범위에서는 다행이 벗어났다. 가벼운 소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별로 생각할 거리도 없이 흥미본위의 소설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무겁다고 볼 수도 없으니 꼭 어느 하나로 나눠서 구분하라면 분명 가벼운 소설이긴 한데, 내가 이 말에서 저항하고 싶은 것은 가벼운 소설이라 해서 다 허섭쓰레기 같은 작품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경험상, 이 책을 읽고 곧바로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으면 재미가 없을수 있다. 박현욱 작가 특유의 문체를 고려해보건대 평범하지 않은 가벼운 어투가 금방 질릴수도 있고 '성'이라는 주제를 너무 자주 우려먹는다는 생각이 들 가능성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거기다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지루하기까지 할 것이다. 가끔씩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 읽으면 웃음이 나오는 문체라는 점에서 분명 장점이긴 하지만 가볍고 금방 물린다는 점에선 또 단점으로 여겨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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