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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공지영

gowooni1 2009. 3. 14. 08:53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저자 공지영  
출판사 푸른숲   발간일 2006.09.15
책소개 1988년 「창작과비평」에 단편 동트는 새벽으로 등단한 공지영의 대표작.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착...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외에도 자신이 생활하면서 겪은 여러가지 사건이나 단상 등을 담은 책을 자주 출간하는데, 오히려 소설보다 그런 쪽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할 때가 왕왕 있다. 그의 소설은 대체로 분위기가 어둡지만 반대로 그 단상집들은 유쾌하기까지 하다. 유명한 작가의 일상도 엿볼수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작가의 이미지, 직업 의식 등을 접할 수 있어 흥미롭다. 한번은 그가 '작가란 자신의 생활 일부분을 떼어내어 이야기로 바꾸어 파는 사람'들이란 식의 이야기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피부로 호흡하고 있을 그 지극히 당연한 말을, 그날따라 무척 새롭게 생각되어서 며칠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작가, 특히 소설가들에게는 상상력과 창조력이 중요한 재능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자신의 삶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건 뼈대가 없는 셈이다. 뼈대가 있어야 재능으로 살도 붙이고 외관도 그럴싸하게 빚어 볼텐데, 그렇지 않다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가 없는, 일종의 개살구 같은 작품만 쓰게 될 것이다. 작가들이 많은 것을 체험하고, 읽고,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보여줘야 할 생활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 일부를 떼어내 보여주는 그들이기에 그렇다.

 

책 앞날개에 있는 저자의 사진.

 아마 이 소설을 막 출간했던 92~93년경 사진으로 생각됨.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공지영은 자신의 삶 일부를 잘 베어내어 소설로 만들어 내는 작가다. 다른 작가들은 소설의 주인공과 자신의 사이에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는 편인데 공지영은 그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그런 거리감이 다른 작가들에 비해 상당히 좁게 느껴지는 소설을 쓴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에서 자신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또 그런 자신에게 항상 충실하고 당당하다. 적어도 독자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물론 그녀는 비교적 최근 작인 '즐거운 나의 집'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소설속 인물과 저자인 자신을 지나치게 일치시켜 바라보지는 말아달라고 독자들에게 부탁했다.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상상력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이었다. 소설가이고, 자신의 직업 의식에 투철한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작가가 시도하지도 않은 저자와 작품과의 거리감을 독자가 일부러 만들어 느껴줘야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잘 되지는 않는다.

 

93년 처음 나왔던 책표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경에 나오는 말이다. 불경의 한 가르침인 이 말은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지며 홀로 전투를 향해 떠나는 무사의 비장함마저 연상케 한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혼자일 뿐이라는 사실과, 홀로 왔다 홀로 가는 유유자적한 인간의 본질을 깨우치게 만들려던 말이겠다. 하지만 이 말은 세상이 그저 호의적이지만은 않음을 한 번이라도 느낀 자라면, 시린 등골을 느끼며 가슴 깊이 동의할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 '혜완'이 생을 대하는 기본 자세를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말이다. 나아가 92년도 이 책을 처음 출간했을 당시의 30살 안팎의 젊은 작가였을 저자의 삶을 대하는 자세이다.

 

독자들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세상과 화해를 하고 있다는 저자.

 

이 소설로 공지영은 페미니스트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는데, 의도한 것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허나 지나치게 여성 피해의식이 드러나서 소설 전체적 분위기를 암울하게 이끈다. 작품 곳곳에서, 여러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혜완의 회상 속에서 그녀가 느꼈던 억압된 사회와 여성에게 불합리하게 작용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구조를 드러낸다. 그리고 혜완은 이런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반발한다. 조금 그 강도를 줄였다면 좋았을텐데 싶을 정도로 빈번하여, 오히려 저자가 페미니스트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그만큼 깊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너무 깊어 자신의 소설을 통해서 폭로하고 싶었을 저자에게 연민도 느껴진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소설속 주인공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화해의 방식을 찾는다. 영선은 자살로, 경혜는 행복을 포기하는 것으로, 혜완은 글쓰기로.

 

그녀의 초창기 작품이었던 이 '무소의 뿔처럼'과는 달리 요즘 공지영의 소설은 다분히 밝고 화해적이다. 그녀도 요즘의 인터뷰에서 '글쓰기는 세상과의 화해' 라고 종종 말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그녀와 함께 성장하고 있으며 세상을 대하는 자세의 느긋함과 여유로움도 느껴진다. 한 작가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살피려면 그 연대기에 맞춰 그의 작품을 보면 되겠다. 언젠가 그녀는 톨스토이처럼,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