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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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과 대학 졸업 후, 외판원으로 5년간이나 성실히 근무하며 가족들을 부양하던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신해 있었다. 눈을 떠보니 몸에는 끔찍하게 생긴 수많은 다리들이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공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뒤집어진채 침대에 누워 있던 그레고르는 일어나는데에만 몇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겨우 일어나 방문을 여니, 가족들은 기겁을 하고 그를 다시 방안에 가둬버린다.
아버지,어머니, 17살된 여동생을 부양하던 그레고르는 졸지에 방 안에 갇혀 하루하루 연명하는 처지가 된다. 벌레가 된 그의 정신은 여전히 인간이다. 그러나 벌레라는 육신은 그의 인간적 정신까지도 서서히 갉아먹는다. 싱싱한 음식은 도저히 입맛에 맛지 않고 상한 치즈 따위만이 맛있다. 꼿꼿히 서있는 일은 너무 힘들고 다리를 땅에 붙인채, 소파 같은 곳의 밑에 기어들어가 약간 눌려 있는 기분이 훨씬 좋다. 어쩔수 없는 감금 생활을 하지만, 벌레가 된 몸으로는 바닥뿐만이 아니라 벽과 천장까지 기어다닐수 있다. 그레고르는 점차 인간다운 삶을 잊어버린채, 벌레로서의 삶에서 나름의 재미를 발견하고 하루하루를 산다.
그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그런 그레고르를 무서워한다. 물론 벌레로 변신한 그가 자신의 가족이라는 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외양이 이미 벌레인 그레고르가 자신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성적으로 벌레가 그레고르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의 정신만은 징그러운 모습 속에 살아 있음을 믿지 않고 확인조차 하려 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레고르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주려고 노력도 하지만 나중에는 그 벌레가 굶어죽어가고 있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게 된다.
가족을 부양하던 그레고르가 변신해 제 구실을 못하게 되어버리니, 나머지 가족 셋은 어쩔수 없이 경제활동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수위 일을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며 여동생은 판매원으로 일한다. 하지만 그들 셋이 일을 해도 그레고르가 없는 한 지금까지 누리던 삶을 유지하기는 벅찰 뿐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셋이서 유지하기에는 너무 크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버거워하고 점차 그레고르가 없어져 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그레고르는 그들이 '없어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날 맥없이 죽어버린다. 한번 벌레로 변한 그는 다시 인간의 몸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먹지 못하여 말라 비틀어진 채, 정신적으로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삶을 끝낸다. 그의 죽음에 크게 비장함은 없다. 다만 쓸쓸할 뿐이다. 그의 가족들은 벌레의 죽음을 잠깐의 눈물로 애도하지만 이내 각자 살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슬픈 이야기를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채 그저 덤덤한 목소리로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상태와 그들이 느끼는 감정만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의 목소리가 없는 카프카에게 독자는 물어보고 싶은게 많아도 물어볼 수가 없다. 그레고르가 왜 변신을 했는지, 왜 하필이면 징그럽고 끔찍한 벌레인지, 그래서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하고 죽었어야 했는지 알수 없는 것이다. 그는 다만 보여준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인간의 모습이 아니면, 또는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되면 그를 저버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족을 진짜 사랑한다고 믿고 그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만약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채 그저 우리에게 짐이 되는 존재로 전락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사랑할수 있는지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그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카프카스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게 한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의 작품세계가 난해하다고들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두가지 정도만 생각해본다면, 하나는 '왜'가 통하지 않는 비논리성이고, 다른 하나는 해석되는 방법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점일 듯하다. 해석의 다양화는 카프카 작품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비현실적이고 많은 상상을 낳을수 있다는 점은 다양성을 심화시킨다. 예를 들어,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의 처지만 봐도 우리는 무한히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무엇때문에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했을까? 벌레로 변했는데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그레고르라면 어떤식으로 상황을 받아들였을까? 그냥 현재를 수긍하고 벌레로서의 삶을 살아갈것인가 아니면 죽어버릴 것인가, 또 아니면 언젠가 다시 인간으로 변할 날을 기다리며 침묵하고 있을 것인가, 등등. 또 그 가족들의 반응을 봐도 여러 고민거리가 형성된다. 저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일까. 저들이 저런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내가 만약 여동생이었다면, 아버지였다면, 어머니였다면 저런 반응을 보였을까.
인간은 상식이 통하는 범주 내에서는 자신의 속성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성질을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카프카는 변신에서, 말도 안되는 설정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 이러한 것임을 보여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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