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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오장원에서 별이 되다 - 삼국지 10

gowooni1 2009. 2. 25. 22:25

 

 

 

삼국지. 10

저자 나관중  역자 이문열 평역  
출판사 민음사   발간일 2002.03.05
책소개 단순한 재미나 흥미 보다는 지혜롭고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들려 주는 수많은 지혜가 담긴 ...

서기 2~3세기,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불교을 받아들이고 율령을 반포하며 한창 나라의 기반을 닦고 있을 시기였다. 그때 이웃 중국에서도 혼란스러운 삼국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정확히 따지자면 220년~280년 정도이다. 따져보면 그들의 삼국시대는 고작 60여년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삼국시대는 (백제가 660년, 고구려나 668년에 신라에 의해 멸망했으니) 그 기간은 거의 600~700년이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삼국지 연의]는 183년~282년까지 약 100년을 기술한다. 본격적 삼국의 형세가 갖추어진 220년보다 훨씬 전부터 기술하는 이유는 당연히 삼국이 형성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유비가 161년 생이고, 제갈 공명이 181년 생이며, 조조는 155년 생이다. 그들이 어느정도 성인이 되어 군사와 권력을 휘어잡고 굵직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기가 183년이 기점인 셈이다.

 

 

제갈 량(子 : 공명, 181~234)

 

삼국지 10권에 접어들었는데에도 아직 제갈량은 건재하고 6번이나 북벌을 하기 위해 떠난다. 사마의와 열심히 싸우다 결국 오장원에서 지는 별이 되고 마는 때는 제갈량의 나이 53세, 서기 234년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다. 10권(마지막 권)의 중반에 이르러서야 제갈량은 죽는데, 삼국지는 그 이후로도 282년까지의 이야기를 펼친다는 거다. 이 말은 결국 나머지 절반의 기간을 이 짧은 페이지로 압축해놨다는 이야기가 된다. 중요한 인물은 전부 세상을 떠나고 그 이후의 역사는 고만고만한 이들이 아웅다웅하면서 싸우는 이야기라는게 평역자 이문열의 말이다.

 

평역자가 그렇게 평했건 아니건 그말은 맞는 듯하다. 실제 그 이후로 위대한 영웅이 등장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우선 촉만 봐도 그러한데, 선대들이 열심히 가꾸어 놓은 가업을 아둔한 후주 유선은 지켜내지 못한다. 제갈량이 죽고, 간신들의 이간질과 감언에 현실안주하다가 위가 쳐들어오자 그냥 항복해버리고 만다. 실로 촉의 어이없는 멸망이다. 그의 아버지 유비는 평생에 걸쳐 그런 기반을 세우다 왕의 자리를 고작 2년 넘기고 죽었는데, 그는 온갖 호위를 다 받으며 끈질기게 목숨을 잇다 천수를 다하고 죽는걸 대비해보면 쓴웃음은 이럴때 나오는 것일거다.

 

후손들의 한심함은 촉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조조가 세운 위에서는 더욱 가관이다. 업보가 돌고 돈다는 말을 그리 믿지 않지만, 조조의 후손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면 섬뜩해진다. 조조가 천자를 끼고 천하를 마음대로 주무를 때, 한의 마지막 천자는 조조를 무척이나 두려워하였다. 조조가 칼을 차고 들어오는 것만 봐도 놀라 벌떡 일어났다는 천자의 이야기, 조조를 죽이려 하는 것이 탄로나자 그 배후 세력의 딸인 천자의 아내를 죽인 이야기등은 더이상 새로울 것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조조의 후손에게 그대로 대물림되었다는 사실이다. 역할은 이제 바뀌어, 사마의의 아들 사마손이 옛 조조를 그대로 흉내내고 결국 위를 멸망시키고 만다. 사마손의 아들 사마염이 제후에 올라 세운 나라가 바로 진(晋)나라다.

 

 

진세조 무황제 사마염(晉世祖 武皇帝 司馬炎, 236~290)

 

오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으나, 다른 두 나라에 비해 멸망에 이르게 된 경위가 그리 한심한 편은 아니다. 이미 사마司馬씨의 나라는 위와 촉을 합쳐 거대해진 이후였다. 위의 인구 429만, 촉의 인구 108만이 합하여 거의 540만이었는데 오는 256만이었을 뿐이다. 단순한 인구수가 아니라 병력으로 따지면 위의 병력은 거의 오의 3배 이상이었다고 하니 시대에 흐름에 맞춰 항복하고 아래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는 것도 지혜라면 지혜겠다.

 

제갈량이 죽기 까지 스펙터클했던 50년은 지나고, 나머지 50년은 대충 마무리 지으려는 듯 끝내는 10권의 마지막에서 결국 삼국을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우는 것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마씨이다. 제갈량과 브레인 대결을 펼치던 사마의는 조조 생전에 크게 쓰이지 못했는데 이는, 자신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을 은근히 미워하던 조조의 성격탓이라고 한다. 조조의 시샘을 받긴 했지만 사마의와 그 후손들이 이룩한 역사를 보면 견토지쟁, 어부지리, 방휼지쟁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기나긴 역사로 봤을 때, 한 시대를 장악했다고 떵떵거리는 사람이라도 그 시간은 극히 순간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게 보면 우주 아래 한없이 겸손한채 인간으로서 할일을 덤덤히 하다 죽는것이 맞을 것이다. 인생이 무상하답시고 염세적이 되는것도 안되지만, 세상을 다 가진듯 지나치게 자만하여 다른 인간에게 해가 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삼국지를 보면 인간의 목숨이 개미만큼 짧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몇 십년이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보자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