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세대교체는 이루어지고-제갈량의 강력한 적수 사마의

gowooni1 2009. 2. 17. 22:53

 

 

 

삼국지. 9

저자 나관중  역자 이문열 평역  
출판사 민음사   발간일 2002.03.05
책소개 단순한 재미나 흥미 보다는 지혜롭고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들려 주는 수많은 지혜가 담긴 ...

소설은 있을법한데 없었던 이야기인데 반해, 역사는 없었을법한데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매력이 있다. 대신 소설만큼 기승전결이 뚜렷하거나 인과관계가 유쾌하지 않은게 흠이다. 그 점을 고려했을때 역사소설은 두가지를 충족시켜준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믿음과 흥미진진한 구성까지 두루 갖추어 읽는이로 하여금 그 재미를 두배로 느끼게한다.

 

물론 이 장점은 삼국지에도 적용된다. 8권에서 이미 관우와 장비, 조조가 죽었기 때문에 약간 재미가 감소할까봐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을 할 틈도 없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비가 예순셋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관우의 원수를 갚고자 오나라를 상대로 군을 일으켰지만 서생 육손에게 참패를 당하고 쫓겨간 백제성에서 눈을 감는다. 오십줄이 다 되어 겨우 제갈량을 얻고 촉을 세운 일생에 비하면 참으로 허망한 삶이 아닐수 없다. 조조가 일찍이 제왕으로서의 삶을 누렸던 것에 비하면 유비의 일생은 기구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삼국지에 제갈량이 등장한 5권 무렵에 유비는 주인공으로서의 위상을 다소 잃어가고 있었다. 가장 스펙터클한 적벽대전도 유관장 삼형제보다는 제갈량과 주유의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한중왕으로 오른 이후부터는 유비는 다소 거만해져 주인공으로서의 인의도 조금씩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비는 죽었지만 상산 조자룡이 일전 목숨을 바쳐 구했던 아두, 유선이 후주로 그 뒤를 잇고 제갈량은 여전히 나라의 브레인이다.

 

세대교체는 촉에서만이 아니라 이웃 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조의 아들 문제-조비-역시 유비 못지 않은 인생무상의 국가대표다. 천자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동생까지 죽이려고 했던 과거를 생각해 볼때, 고작 7년 동안 왕위를 차지하다 40살의 이른나이에 병사한다. 딱히 이룩해놓은 업적없이 그가 세상에서 얻은건 예쁜 아내들과 아들이고, 먼저 아내 진씨에게서 얻은 아들 조예가 뒤를 잇는다. 한편 오의 손권은 건재하다.

 

솥발처럼 갈라진 천하는 서로를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이는데 그 전에 제갈량은 남방을 평정한다. 지도상으로 보면 촉나라는 상당히 아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남방지역이라 하면 동남아시아나 그 근처일 것이다. 9권에서는 나관중의 편애를 받고 있는 공명이 또 한차례 신격화 되는데 남방평정의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이문열의 삼국지는 평역자의 개입이 지나쳐 다소 흥을 깬다 하여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않은데-뒤로 가면 갈수록 많다- 그 이유는 뒤로갈수록 정사보다는 나관중의 소설가적 상상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기 때문이다. 즉 허구성이 짙어진다. 그렇지만 나처럼 정사를 따져가며 객관성을 추구하는 독자라면 따로 조사해볼 필요없이 역사를 바로 알수 있기 때문에 편한점도 많다.

 

한편 읍참마속(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희생한다는 뜻의 고사성어)하는 장면-제갈량이 군법을 어긴 마속을 울면서 목베게 한다-에서는 나라의 본보기에 있는 사람들이 지녀야할 대의멸친의 정신을 또 한번 느낀다. 대부분의 권력자에게 볼 수 없는 고결한 자세다. 9권의 마지막에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 완벽했던-인격, 문무 통틀어- 조자룡도 일흔즈음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자룡의 죽음을 어쩔수 없이 아쉬워하며, 인간사를 휘어잡는 한세대란 것도 긴 역사에 비추어 보면 찰나의 시간에 지나지 않음을 느낀다. 쌩뚱맞지만 권불십년이라는 말도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