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도련님-나쓰메 소세키

gowooni1 2009. 2. 15. 00:27

 

 

 

도련님

저자 나쓰메 소세키  역자 육후연  원저자 坊つちゃん  
출판사 인디북   발간일 2002.07.19
책소개 세상물정 모르는 고집불통 도련님의 좌충우돌 세상 이야기. 무모하고 단순하지만 정의로운 도련님과 너구...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을때는 그 조직내의 부당함과 모순이 무척이나 많이 보이는데, 조직을 벗어남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듯이 안좋았던 기억들을 금새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보자. 학창시절에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이던 학교의 수업 분위기에 숨이 막혔고, 개성을 이상한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친구들로 인해 언제나 '보통'의 수준을 유지하는데 온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회사에 다닐때에는 윗사람들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주면서, 너무 튀지 않는 사원으로서 롱런(longrun)해야 나중에 회사생활 잘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조직의 얼토당토않은 부조리가 눈에 훤히 보이더라도 눈 뜬 장님으로 쉬쉬하고 있어야 서로가 편하다. 이미 관습처럼 굳어진 인습을 괜히 들춰내봐야 골치아프다. 평생 속해있을 조직도 아니고 잠시 몸담고 있을때만이라도 아무탈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게 보통사람들의 속내다.

 

간혹 조직내 활기 넘치는 신입사원이 들어와서 분위기를 생기발랄하게 만들어주면 모두들 좋아한다. 그러다가 그가 조직내 모순을 발견하고 이를 윗사람에게 공식적으로 고하면 다들 자기 몸을 사리기에 바쁘다. 불똥이 자기에게 튀어오지 못하도록 한발 물러서며 '아직 사회생활을 덜했네' 라고 어린애 취급을 한다. 물론 그 모순이 조직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임이 확실하고 또 조직의 윗사람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조직은 매우 발전할 것이다. 그렇지만 보통 현실이란게 그렇지만은 않다. '업보란 돌고 도는게 현실'이라는 생각으로 버틴 사람들이 조직의 윗자리를 꿰차고 있고, '원래 다 그런거야'라는 식으로 아랫사람을 다독이며 귀엽게 봐주기나 하면 다행이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용감하지 못해서 드라마나 영화에나 나올법한 맹랑한 신입사원은 되지 않는다. 다들 전前사람들과 같은 조직화과정을 거치며 현실에 순응하고 만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영웅처럼 나타나서 자신들의 가려운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현대판 '맹랑한 신입사원'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살던 시절이 우리보다 100년이나 전이라서 요즘같은 회사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란 결국 거기서 거기임을 보여준다. '도련님'은 도쿄에서 적당히 공부를하고 시골 중학교의 선생으로 발령이 난다. 그 시절이 다 그랬을 것이고(요즘도 크게 다를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도련님은 남을 가르치기에는 인격적 성숙이 덜 됐다. 말 그대로 아직 도련님일뿐인데 머리 큰 중학생을 가르치러 가는 것이다. 월급 40엔에 팔려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딱히 해야겠다는 일도 없어 제안받은 김에 승낙하고 만다.

 

시코쿠(西國) 지방의 시골로 발령이 난 도련님은 폐쇄적인 사회에서의 고충을 느끼며 첫 사회생활을 한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접한다. 하숙집 주인, 수학 주임, 교장, 교감, 학생들, 등등. 작고 특별한 일이라곤 일어나지 않는 시골사회-폐쇄적인 사회-가 늘 그렇듯 '별것도 아닌 일'이 '별일'로 바뀌어 버리는 사건들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선생으로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외식도 마음껏하지도 못하는 도련님의 속은 영락없이 그를 괴롭히는 중학생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 그런 중에도 모범을 보이라 압박하는 윗사람들과, 정작 본인들은 그러지 않는 '표리부동함'에서 오는 인간에 대한 불신, 어제는 적이었다가 오늘은 친구가 되는 인간관계, 기존의 질서를 악습과 함께 끌어안으며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기득권자들에 대한 혐오, 등등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잘 나타나있다.

 

그렇지만 도련님은 이런 것들에 굴복하지 않고 '도련님답게' 현실에 맞선다. 굳이 자신을 맞지도 않는 현실에 구겨넣으려 하지 않고 '도련님 기질'로 자신답게 인생을 걸어나가는 주인공을 보면 조금은 통쾌하다. 구역질나는 기득권자의 대표는 단연 교감선생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전부 전근을 보내고,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로 주위를 채우는 캐릭터인데, 선생으로서의 체면을 누구보다 운운하면서 스스로는 기생집에 들락거린다. 그는 만만해 보이는 도련님을 곁에 남겨두었다가 호되게 당한다. 도련님은 기생집에서 나오는 교감을 현장에서 붙잡아 실컷 두들겨준뒤 사직서 한장 달랑 남겨놓고 그 시골 마을을 떠나버린다. 교감은 물론 자신의 '체면'때문에 실컷 맞아놓고 경찰에 신고도 못한다.

 

도련님의 복수방법은 사뭇 통쾌하지만 그렇게 호탕하다고도 할 수 없다. 개인의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복수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결국 조직이나 기득권자들 전체에게 할 수는 없었다. 개인이 조직의 부조리를 엎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아니다. 정의를 세울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사악한 것을 무너뜨린다 해도 단순한 반란으로 치부되는게 현실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