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마음-나쓰메 소세키

gowooni1 2009. 2. 20. 16:03

 

 

 

마음

저자 나쓰메 소세키  역자 김성기  
출판사 이레   발간일 2008.05.20
책소개 나쓰메 소세키가 만년에 쓴 대표적인 소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적인 작품『마음』....

 

1867년, 도쿄 출생, 본명 킨노스케


일본 메이지 유신(1868)이 일어나기 직전 해에 태어난 나쓰메 소세키(1867)는 우리와 상당히 먼 시대의 사람이지만 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처럼 느껴진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담담한 문체와 간결한 문장, 너무 길거나 짧지도 않은 호흡이 소세키의 문인으로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삶에 너무 깊이 관여하지 않고 타인 또는 자신과도 거리를 둔 채 살아갔던 것처럼 상상이 되지만,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많은 생각을 했음을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소설 때문이다.

 

'마음'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작품에 대한 대표적인 평들이 지식인의 고뇌를 표현했다는 식으로 내려지고 있지만 '마음'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대중적인 평가야말로 안이하고 겉핥기식의 감상임을 깨닫게 된다.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한 젊은 청년이 '그 분'을 선생님이라고 회상하면서 시작하는데, 당연하겠지만 주인공은 회상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이후 근대사회 아래서 살아왔고 누구보다 유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식인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믿지 않으며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방관자, 염세주의자의 입장을 취한다.

 

청년이 처음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여름날 어느 바닷가에서이다. 그가 선생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선생님이 어느 서양인과 함께 수영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선생님이 서양인과 있지 않았더라면 청년의 눈에 띄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번 눈에 띄었다고 해서 사람에게 끌리기는 쉽지 않다. 청년이 선생님에게 계속 끌렸던 것은 선생이 지니고 있는 세상을 밀어내려는 듯한, 어찌보면 세상을 초월한 듯하면서 염세적인 눈빛과 태도 때문이었다.

 

도쿄로 돌아온 이후에도 청년은 선생님의 집을 자주 찾아간다. 그러는 사이에 청년은 대학생이 되고 졸업도 하게 된다. 그러나 청년의 역할은,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취하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객관적으로 비춰주는 데에 불과하다. 만약 이 이야기가 선생님 혼자만의 독백으로 이뤄졌다면 선생이 지니고 있는 태도가 고상하게만은 비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청년이 아무 사심없이 그를 존경했기 때문에 독자는 선생을 다소 비현실적이고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로 인식할 수 있다.

 

물론 청년은 또 다른 역할을 한다. 이미 세상에서 아무도 믿지 않는 선생님에게 죽기 전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진실로 믿어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을 믿지 않는 선생이었지만, 청년이 너무도 어렸고 그래서 오히려 더 사심없이 단순히 친해지고 싶다는 어린 아이같은 (어쩌면 강아지같은) 태도가 의심으로 가득찬 마음을 열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청년은 선생이 죽기전에 자신의 과거를 전부 적은 유서 편지를 받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선생이 세상을 싫어하게 된 계기, 사람을 믿지 않게 된 계기, 그 어느 것에서도 의욕을 느끼지 않게 된 계기 등은 전부 그 유서에 들어있다. 그런 발단이 된 사건들은 그리 획기적인 일들은 아니다. 숙부에게 배신을 당하여 재산을 상당히 빼앗기고 도쿄로 올라와 홀로 공부를 하는 선생은 어느 하숙집에 들어간다. 그 하숙집은 군인의 미망인과 그의 딸이 살고 있는 집이며 (누구든 예측할 수 있듯이) 그는 그만 딸을 사랑하게 되고 만다. 그렇게 마음을 키워갈 무렵 그는 가난한 친구 K를 자신의 하숙집에 데려온다. 배울점이 많은 강직한 성격이지만 가난한 K를, 존경의 마음과 인간을 구제하겠다는 묘한 감정이 뒤섞여 데려왔지만, 결국 K도 미망인의 딸을 사랑하게 되고 선생은 질투심에 휩싸여 괴로워한다.

 

끝내, K보다 한발 앞서 미망인에게 딸을 달라고 하게 되고 그녀는 흔쾌히 허락한다. K에게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미안함을 감출수 없지만 오히려 K는 초월적인 자세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대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후 결국 K는 자신 목 부분의 경동맥을 그어 자살을 한다. 그러나 K의 유서에는 그 어느 부분에도 선생을 질타하거나 원망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단지 진작 죽었어야 할 자신이 왜 그때까지 살아있어야 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절망감 뿐이다. 그 이후로 선생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검은 그림자를 안고 다니며 행복해야 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다가 그도 자살을 하고 생을 마친다.

 

행복했지만 온전히 행복하지는 못했던 삶, 행복했어야 할 삶을 그리워하며 결국엔 양심의 가책을 떨쳐버리지 못한 선생. 그는 결국 자신이 혐오했던 숙부와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절망감에 허덕이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만큼 타인도 믿지 못한 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다. 지나친 양심 때문에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여 스스로의 행복한 삶은 물론 주위 사람에게까지 완벽한 행복을 선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선생이 조금만 '덜 인간적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면 '더 인간적이어서'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선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듯 보여도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자신과 투쟁을 하는 지식인의 삶이다. 그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스스로와의 싸움'을 벌이며 세상을 살아갔을까.

 

선생과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 수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 내부와의 싸움을 벌이며 살고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에 적응하며 '이상에 모순될 수밖에 없는 나' 사이에서 고민하고 투쟁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선생과 같이 '이상에 모순될 수밖에 없는 나'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다행스럽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 선생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내부 마음을 이렇게 정확하고 섬세하게, 자칫하면 경박할 수도 있는 인간의 추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보듬어 안듯 묘사한 것이 '마음'의 백미다. 인간 마음에 대한 관심와 애정이 없다면, 그리고 그것을 따듯하게 감싸듯이 표현해보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소세키가 이런 작품을 그려낼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