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홀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책..

gowooni1 2009. 2. 12. 13:06

 

 

 

 

호밀밭의 파수꾼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역자 공경희  
출판사 민음사   발간일 2009.01.20
책소개 물질적 가치만 내세우는 세상의 비인간성에 염증을 느끼며 반발하는 주인공 홀든. 순진함과 예리한 통찰...

하나의 장편 소설을 쓰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드는지 평균적 기준은 있겠지만 대중없음은 확실하다. 어떤 사람은 몇 년에 걸쳐서 쓰고 또 다른 사람은 단 몇 주만에 탈고하기도 한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쓴 '호밀밭의 파수꾼'은 후자에 속한다. 그는 호텔에 2주동안 틀어박혀서 이 소설을 완성했고, 이 2주 이후 단번에 유명인이 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동시에 청소년 금지도서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그 이유는 콜필드가 '너무 불량스러운'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방황하고 고뇌하는, 불안정한 정신을 가진 이 처량한 소년은 마침 성에도 눈을 떠가며 여자, 담배, 술 등을 주 관심사로 삼고 있다. 개방적인 미국 사회에서 이런 것 때문에 청소년 금지도서로 지정했다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지만 그건 벌써 60년 전의 일이다. 비틀즈의 존 레논 암살자 마크 채프먼이 탐독하였고, 암살 순간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 책처럼 이렇게 사회적인 뒷이야기가 많은 소설도 드물 것이다. 샐린저는 단지 '홀든이 싫어할까봐 두렵다'는 이유로 영화화하기를 거부한채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1919년에 태어났으니 아직 살아있다면 91살의 할아버지로 지내고 있을것이다.

 

홀든 콜필드는 '또' 퇴학을 당하고 뉴욕에 있는 집으로 간다. 이 책은 예정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주인공이,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3일간에 걸쳐 보고, 방황하고, 울고, 고독해했던 이야기다. 고작 3일간의 이야기가 어떻게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두 세장만 읽어봐도 이유를 알수 있다. 불안한 정서의 소년은 대중없이 자신의 사색을 따라가고 그것을 내뱉듯 말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읽을 때의 독자가 홀든 못지않게 대중없고 흔들리는 정서의 소유자라면(또는 그럴만한 나이라면), 그러니까 홀든과 자신을 동격화하는 독자였다면 한번 더 읽어보면 좋다. 한창때의 고뇌하던 시기에서 벗어나 '우리도 한 때 콜필드처럼 무한정으로 쓸쓸하고 외롭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지' 하며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이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고뇌의 시기'를 관조할 수 있는 눈으로 홀든을 보면 이 소년에게 애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홀든 콜필드는 17살이고 키는 185센티미터나 되지만 그 속은 13살도 못된 어린아이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부유한 집의 아들이지만 한없이 비뚤어지고 모든 것의 부정적인 것만 본다. 홀든이 모든 것을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이 가식이고 솔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가식적인 어른을 특히 싫어하는데 그 중 혐오하는 부류는 홀든의 교장선생과 같은 사람이다. 돈 많고 부유해보이는 학부모들과는 자리에 서서 30분이고 1시간이고 즐겁게 웃고 떠들수 있지만 가난해보이는 학부모에게는 억지로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보인채 대화하기조차 꺼리는 사람. 즉 속물을 싫어한다. 사람을 진실된 마음으로 보지 않고 가진 부의 척도로만 대하는 어른들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에 반항한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부유한 학교기 때문에 그런 가식적인 아이들이 차고 넘쳤다. 그래서 홀든은 항상 학교를 싫어하고 퇴학을 당하고 만다.

 

홀든이 모든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자와 어린아이, 수녀를 좋아한다.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저 성에 눈을 떠가는 소년의 입장에서 여자들을 좋아할 뿐이다.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하기 때문에,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좋아하는 건 어린아이와 수녀들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귀여운 여동생 피비를 끔찍하게 좋아하고 아낀다. 이 세상이 전부 자신의 적으로 돌아선다 해도 피비만이 자신을 옹호해준다면 기꺼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 퇴학을 당하고 뉴욕에 와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도 가는 이유는 피비 때문이다. 또 다시 실망할 부모를 보고 싶지는 않아도 피비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몰래 집에 잠입할 정도다. 만약 피비가 없었다면 홀든은 정말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정신병원에 기꺼이 입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주만에 쓰여진 책이고, 3일간의 여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읽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또한 화자가 홀든이니만큼 독자에게 어려운 메시지를 전달할만한 철학도 없다. 책 전체는 홀든의 독백으로 이어져 나가며, 그 과정에서 어린 소년의 정신없고 일관적이지도 않은 생각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분명 메시지는 있다. 누구나 홀든처럼 무조건적으로 세상이 싫고 자살하고 싶을만큼 우울한 적이 있었을 것이며 그와 동시에 가식적인 어른을 혐오하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나는 얼마나 세상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또 얼마만큼의 가식을 지니고 순수성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가식'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17살 소년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우리가 아직 그렇게까지 속물적이거나 가식적이지 않기 때문일것이다. 또는 이미 그런 '홀든이 싫어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에는 어린아이같은 순수성을 간직하고 때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