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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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래도 허구성이다. 그러나 허구성은 개연성으로 인해 더 빛을 발휘한다. 실제는 아니지만 있음직한 이야기라는 사실. 그래서 소설속 세계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펼쳐지고 있을거라는 믿음이 흡인력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런 매력은 작가들의 자전적 소설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역시 작가의 삶을 허구적으로, 그러나 진실되게 반영한다.
장소는 독일. 시대는 세계 양차 대전을 낀 20년 남짓한 시간이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은 전세계적으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울함이 바로 그것인데, 생의 한가운데에서도 어김없이 회색빛의 짙은 우울함이 드러난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배경색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소설은 어둡다. 우울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암담한 그 시대 사람들의 현실이 보인다. 너무 우울하고 불안정한 등장인물의 심리상태가 독자를 머리아픈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의 제목은 '생의 한가운데'이다. 생의 한가운데에 서서 생의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느끼고, 당당히 맞서 이겨내고, 끝내는 생 자체를 끔찍히 사랑하는 주인공 니나의 모습은 어쩌면 팜므 파탈같은 매력을 품어낸다.
소설의 입체적인 구성도 돋보인다. 이 소설의 현실적인 장소는 단순히 니나의 집과 그 근처 산책로일뿐이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장장 18년동안을 꾸준히 사랑했던- 슈타인의 일기와 니나의 이야기, 니나가 쓴 소설, 니나의 언니 이야기 등이 적절한 배합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루한 틈을 주지 않는다. 딱 구분되어 있는 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불연속성과 연속성이 조화롭다. 어쩌면 인위적인 장(章)의 구성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을 안겨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니나는 불쌍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자다. 남성적인 사회적 명성과 여성으로서의 풍부한 표정, 반항적인 마녀의 매력을 한 몸에 지닌 그녀는 외부적으로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사랑했던 사람들과 결국 거리감을 두며 심리적이든 사별이든 이별을 감행하고, 온전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고독하고 외로운 영혼이다. 그러나 니나는 뼈에 사무치는 고독감까지도 삶의 일부로 인정하며 그 감정을 끔찍하게도 사랑하고 결국 자신만의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간다. 자유로운 정신으로 온전히 자신의 삶을 즐기며. 그녀는 자신의 생을 끔찍하게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말은 니나의 입을 빌린 루이제 린저, 본인의 의사라고 여겨진다. 생의 불행하고 부정적인 면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이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생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열정을 지닌 이 주인공을 보며, 우리들도 각자의 생을 어느 정도로 사랑하고, 얼마나 열심히 살아나가고 있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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