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역사*문사철200

최초로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군주, 메리 스튜어트.

gowooni1 2009. 1. 29. 03:01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  역자 안인희  
출판사 이마고   발간일 2008.12.15
책소개 이 시대 최고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소설! 비운의 왕비 메리 스튜어트를 21세기로 불...

만약 엘리슨 위어의 '엘리자베스 1세'라는 이 어마어마한 두께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일거다. 773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 안에는 대영제국을 이룩한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1세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의 최대 라이벌 '메리 스튜어트'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에서는, 이 스코틀랜드 여왕만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좀 더 섬세한 필체로 그 메리의 삶을 묘사한다. 엘리자베스가 두려워하고, 그리하여 반평생을 감금시켜야만 했던 비운의 여왕. 덕분에 그녀는 언제나 엘리자베스 1세의 주변인물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조금 위로하자면, 그나마 가장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 엑스트라, 즉 조연인 것이다. 츠바이크는 이 여인이 불쌍했는지 자신의 책속에서만큼은 주연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자의 노력은 독자들에게 그리 깊게 와닿지 않는다. 엄연히 주인공으로 내세워진 책속에서조차 그녀의 삶은 엘리자베스 없이는 절대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메리 스튜어트        VS        엘리자베스 튜더

 

엘리자베스는 왕위 계승 서열 3위였다. 운이 좋아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뿐이다.(서열 1위과 2위가 모두 죽고 나서야 겨우 왕이 되었다) 이복 언니인 블러드 메리(피의 메리 : 잔혹해서 붙여진 별명) 여왕 때에는 목숨의 위태로움을 절실히 느꼈다. 그렇게 천신만고끝에 얻게 된 왕의 자리라서 그녀는 '악착'같았다. 감정이 자신의 자리나 이익을 위태롭게 만드는 종류라면 과감히 잊어버리고 여왕 본분의 자리로 돌아갔다.

 

메리는 사정이 달랐다. 태어난지 6일만에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 프랑스 왕비가 된다. 따지고보면 잉글랜드 왕좌의 적법성도 엘리자베스보다 높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평생 잉글랜의 왕위 계승권을 노리며 엘리자베스를 괴롭혔다) 타고나면서부터 머리에 황금관이 씌워진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소중히 다룰 줄 몰랐다. 그냥 그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성과 감정이 대립하는 때에는 이 세상 전부를 잃는다 해도 감정을 선택했다.

 

20대의 메리 스튜어트.

그녀는 훤칠한 키와 뛰어난 외모로 모든 시인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엘리자베스는 질투심이 심하여 스코틀랜드에서 오는 사신들에게 항상

자신이 예쁜지 메리가 예쁜지 물어보았다.

 

이성이 옳으냐 감정이 옳으냐는 따질수 없다. 사실 엘리자베스는 일평생동안 메리를 시기하고 부러워했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가 지닌 '감정적 솔직함'이었다. 메리는 '왕의 자리'와 '여자의 위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 서슴없이 후자를 택하였다.(왕은 숨쉬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어서 생각할 가치도 없었을지 모른다) 덕분에 그녀는 3번씩이나 결혼을 하고,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죽을만큼 하고, 그만큼 괴로워했으며, 나중엔 모든 것을 잃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불같은 사랑을 경험하고 수차례 결혼을 하였으며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처녀왕' 엘리자베스에게는 가장 부러운 점이었다.

 

로버트 더들리(左)와 엘리자베스 1세(右).

 둘은 소꿉친구였는데, 엘리자베스가 헨리 8세의 총애를 얻지 못하여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던 시절(왕위계승 서열 3위도 없던 시절), 더들리는 자신의 재산을 전부 털어서 그녀를 도와주었다.

이 일을 잊지 못한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여왕이 되자마자 로버트 더들리를 최고 자리로 불러들인다.

 

'사랑'을 대하는 측면에서 이 두 여인의 결정적 차이가 또 한번 드러난다. 엘리자베스는 일생동안 로버트 더들리를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그러나 이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왕권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사랑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권위는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신용하는' 남자를 골칫덩이 메리와 결혼시켜, 스코틀랜드 쪽에서 다시는 잉글랜드 왕위계승권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없게끔 만들려고 했다. 가장 신뢰하는 남자를 통해 적국의 라이벌을 견제하려는 모습에서 엘리자베스가 얼마나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감정'에 인색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같은 열정'의 메리는 달랐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 세상 전부와 맞바꾸었다. 그녀의 사랑에 대한 맹목적 열정은 자신의 둘째 남편 단리를 죽이고, (그 남편을 죽인) 보스웰 백작과 결혼을 감행한 모습에서 절정을 이룬다. 덕분에 그녀는 귀족들에게 감금됨은 물론 백성들에게도 버림받는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을 위해 전 남편을 죽일 줄도 알고, 모든 법과 윤리와 도덕을 무시할 줄도 알고, 스코틀랜드 백성들도 저버릴줄 아는 '대단한 군주'였다.

 

결국 메리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25세가 되는 지점에서 다 겪어야 했다. 남은 20년간은 엘리자베스의 감시 아래서 죽은듯이 지내다가,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 동등한 군주의 입장에서, 엘리자베스가 메리 스튜어트를 처형할 권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역사는 승자들에 의해 쓰이는 법이다. 사실 메리는 시대에 뒤처진지도 모르고 끊임없이 반란을 시도하였으며 이 증거들이 덜미가 잡혀 나름 '합법적으로' 처단된 것이다. 메리를 처형하고 나서 엘리자베스의 대영제국은 번창했다. 무적함대 스코틀랜드도 격파하고, 유럽 극빈국에서 최강국으로 거듭났으며, 엘리자베스는 70세까지 장수하였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영국의 여왕으로 살면서, 평생 극도로 검소한 생활을 했지만

여왕으로서의 위엄을 위해 의상과 보석에만은 돈을 아끼지 않았던 엘리자베스 1세.

그녀가 죽은 후 옷장에는 3000벌이 넘는 옷이 있었다고 한다.

 

여자로서의 삶을 산 메리와 여왕으로서의 삶을 산 엘리자베스. 여기서도 대기만사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듯하다. 그릇의 됨됨이도 파악하기 전에 왕이 된 자와, '적법하지 못하여' 스스로 됨됨이를 키운 자. 이 두 사람을 통해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어울리는 그릇인지 아닌지를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조건 모든 것을 싸워 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더라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더라도 스스로 그만한 사람이 되지 못할때는 어떤 파국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게 좋다. 그릇을 스스로 키우지 않은 메리 스튜어트는 불쌍하게도 '최초로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군주'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사실, 메리 스튜어트의 초상화를 보면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 같지 않지만, 당시(16세기) 유럽 초상화가들의

수준이 매우 낮았다는 점을 감안해서 보면 될 듯하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엘리자베스 1세의 후세는 결국 메리의 아들 제임스 1세였다는 점이다.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왕좌를 놓지 못했던 엘리자베스와, 결국 자신의 아들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전체를 지배하게된 메리 스튜어트. 과연 둘 중 누구를 승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