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역사*문사철200

융통성없는 선비들의 고매한 정신

gowooni1 2010. 1. 18. 21:40

 

 

 

선비들의 고단한 여정

저자 이용재  
출판사 부키   발간일 2009.08.05
책소개 옛 건축물에 선비들의 발자취가 살아 숨쉰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고 찾아가는 답사 여행기『선비들의...

 

명예. 명예는 쫓아가면 달아나는 성질을 지닌 대표적 덕목이다. 그것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면 더 얻기 어렵고 더군다나 하잘것없는 명예를 위한다면 그건 더이상 명예라고 할수 없다. 그러므로 이미 대중들로부터 명예를 얻은 사람은 진짜 명예를 가진 사람이다. 명예는 얻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므로 명예로운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시대마다 요구되는 성품이 달라질 수 있다. 조선시대 열녀들의 지조는 오늘날 그시대만큼 높은 명예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나 여전히 유효한 성품도 있다. 오늘날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어느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 중 하나가 '하나를 파고드는 우둔함', 강직일 것이다.

 

장인과 선비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선택한 것 외에는 눈길한번 주지 않고 외길을 간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장인이 자신의 '일'을 지킨다면 선비는 자신의 '사상'을 지켜낸다. 전자보다는 후자에게 우리는 강직하다는 말을 쓴다. 급변하는 이 시대에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는 선비의 정신은 우리시대에 맞지 않는 건가? 굳이 이시대까지 끌어들이지 않아도, 자신의 일가족이 처형당할줄 알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사육신들의 절개는 융통성 결여인가? 배를 곯고 고사리만 평생 먹다 죽어도 자신의 뜻대로 살았던 선비들은 평민들보다 어리석고 현실성없는 사람들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명예가 남는 것이다.

 

계유정난으로 왕위찬탈을 한 세조의 편에 서지않고 단종의 복위를 노리다가 사지가 찢겨죽은 사육신과 기꺼이 현실에 굴복하는 일없이 전국을 유랑하며 지조를 지킨 생육신들, 권세가에 의존하지 않고 차라리 먼 땅으로 유배를 가 세한도를 남긴 김정희와 유배지에서만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정약용. 역시 유배 중에 관동별곡을 남긴 정철과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옳은 길을 왕에게 권하다 여든 두살의 나이에 사약을 받은 송시열. 셋째 아우에게 흔쾌히 세자의 자리를 양보하고 부처의 뜻에 귀의한 효령대군. 그들은 배부르고 마음 편한 범인凡人이 되기보다 후대에 길게 남을 높은 정신을 추구했다. 그리고 시간을 품은 고상한 정신은 세월을 넘나드는 명예를 낳는다.

 

이용재의 <선비들의 고단한 여정>은 제목 그대로다. 그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면서 선비들의 고매한 정신을 느낄수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엄선된 선비들의 일대기를 통해 역사를 읽을 수 있다는 점, 각 선비들이 머물렀던 장소와 묘소들의 사진을 통해 한옥의 건축학적 접근을 살짝 할 수 있다는 점이 묘미다. 건축학을 전공한 저자의 역사적 해박함에 놀라기보다 그런 복잡한 역사적 접근을 처음 들어보는 누구라도 쉽게 흥미를 느낄수 있도록 풀어나가는 그의 필력에 감탄한다. 조선의 오백년 역사를 한번 훑고 지나갈 수 있게끔 적절한 시대의 선비들을 뽑아내어 일석 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역사 정리와 대표적 인물 일대기, 그리고 현장 사진. 자신의 딸에게 설명한다는 차원으로 역사적 검증을 받아 사라진, 요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용어를 적절한 타이밍에 설명하는데, 그 대화체에 드러나는 개성이 유식의 즐거움을 더 증가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