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역사*문사철200

2008.07.10-엘리자베스 1세 여왕-캐서린

gowooni1 2008. 7. 10. 23:32

예전, 스칼렛 요한슨과 에릭 바나 등이 나와서 흥미롭게 봤던 영화, [천일의 스캔들] 덕분에 영국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영국의 전체적인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기 보다는, 헨리 8세부터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기인 '튜터 왕조'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시간이 나면 '헨리 8세의 여인들' 이란 책과, '엘리자베스 1세' 라는 책을 봐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두 권 다 엄두가 안나는 두께의 책이라 미루고 있다가, 비교적 얇은 책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라는, 별로 팔리지는 않은 듯한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였다. 내용을 한번 �어보니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인생 전부를 다룬 책은 아니고, 그녀의 11세 때부터, 13살이 되기까지 3년간(1544~1547년), 작가가 사전 조사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엘리자베스의 입장이 되어 쓴 일기이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던 것은 사실 이 일기가 정말 엘리자베스 1세가 어릴적 쓴 일기를 번역한 책인 줄 알고, 이런책도 있나? 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이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혼합된 가상의 일기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약간은 속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국제정세나, 생활 방식, 사람들의 생각관 등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어린 공주의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었다.

 

역사적 사실도 흥미로웠다. 엘리자베스의 엄마 앤 불린이 어디서 처형당했는지(타워 그린)도 알 수 있고, 그 이후로 몇명의 아내를 맞이했는지, 그리고 종교에 관해 교황과 대립한 갈등.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던 그 영국과 주변국의 정세등등. 하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 보다는 1500년대 영국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생활을 했고, 궁정 내부의 상황은 어땠으며, 의술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목욕을 얼마나 하지 않았는지, 이런것들이 내겐 더 흥미로웠다. 영화로 보기에는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환상적일 것만 같았던 궁중생활은 사실, 사람이 조금만 모여드면 음식물 쓰레기와 오물, 배설물 때문에 악취가 진동을 하는 곳이었고, 방마다 쥐가 드글거리는 곳이었으며, 여인들이 우아하게 걸치고 다니던 숄은 실은 벼룩이 몸에 들러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천조각에 불과했다. 또 어린 엘리자베스 공주가 3주전에 목욕을 했는데 또 목욕을 하라고 재촉을 하는 유모가 결벽증이라고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아무리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던 영국의 왕족도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6명이나 되는 왕비들을 거느렸고 잘생겼으며 용맹하기로 유명한 헨리 8세도 사실 비만이었고, 말년에는 그 정도가 너무나 심각해서 시종 2명이상의 부축을 받아야 앉을 수 있었다. 특히 다리 한쪽에는 종기가 있어서 항상 붕대를 감고 다녔는데 매번 축축하게 고름이 젖어나와 잔으로 한가득 고름이 빼내야 했고, 그 때문에 악취를 풍기고 다녔던 왕이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런 아버지었어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11살의 어린 자신을 궁에서 추방했어도, 헨리 8세의 귀여움과 관심을 가지고 싶어했던 어린 엘리자베스. 그녀는 왕위서열 3위였고, 그래서 더욱 어린 마음에 애정과 관심에 목말라 있었던 듯하다. 그 어린 공주의 평범한 일상들을 담은 내용이어서 재미있었고, 어떻게 이런 어린 소녀가 대영제국을 45년간이나 통치하며 절대 권력을 자랑한,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여왕이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더욱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그래서 조금 두꺼운 책이더라도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다면 기꺼이 다른 책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엘리자베스 여왕보다는 헨리 8세에게 훨씬 관심이 많았었지만, 지금은 말년의 비만과 종기로 고생했던, 심각한 여성편력을 가지고 길지 못했던 여성관계들의 연속이었던 그에게 관심이 사라졌다.(사라졌다기 보다는 시들해졌다) 오히려 자기관리에 철저했고, 어릴적부터 공부에 열심이었으며 항상 자신의 주관과 생각을 잃지 않고 살아갔던 엘리자베스여왕에 대해 애정이 생겼다.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에 한 나라의 여왕으로 올라서 훌륭하게 정치를 하고 통치를 했던 여자. 다른 왕들에 비해서 비교적 늦은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왕위 서열 3위였기 때문에 에드워드 왕과, 메리 여왕이 병으로 서거한 후에야 올랐다) 오히려 그렇게 보냈던 시간이 영특하기만 했던 소녀를 엘리자베스 1세라는 큰 그릇으로 바꿔준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아무튼 요새 부쩍 늘어난 역사와 철학에 관한 나의 관심이 매우 만족스럽다. 이 시기와 기분을 놓치지 말고 열심히 내 관심을 충족시켜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