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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gowooni1 2008. 10. 30. 13:31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 한성례 역 : 부엔리브로 : 355p

 

시오노 나나미의 15년에 걸친 대작 로마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15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전부 읽은 사람은 많이 없을 것 같다.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엄청난 량에 섣불리 손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역사를 알고 싶어하면서도 함부로 찔러보지 못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며,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로 '로마인 이야기 1'을 약 1년 넘게 들춰보다 말았다. 이런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시오노 나나미는 (친절하게도) 압축률이 매우 높은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냈고, 발간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이것만이라도 읽어봐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 또 다시 심리적 장벽에 가로막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서 펼쳐보게 되었을 때는, 생각외로 술술 읽혀서 다소 놀랍기도 했는데, 1권만 오래도록 반복하며 읽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생소했던 라틴어 이름들과 친근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 접하는 문화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고 와닿지 않는 절대적 이유중 하나는 그 문화 고유명사가 일종의 외계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말이 그 말같고, 이 사람 이름이 저 사람 이름 같은 그 느낌. 처음 읽었던 일본 소설 '빙점'에서도 이런 현상을 겨우 극복하고 친근해지기 시작했는데,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누스', '~~투스', '~~레스' 의 명사들과 친해지기가 어찌나 어려웠던지.

 

책의 분위기는 딱,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이나, '하룻밤에 읽는 이야기 한국사' 와 비슷하다. 몇 백년, 몇 천년에 걸친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사를 매우 간략하게 압축하여 이야기 하고 있으니 간략한 사실만 넘겨 짚고 지나가는 데에도 머릿속에는 압축된 역사가 차곡차곡 쌓인다. 당연히 이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중간에 머릿속으로 시간을 정리하여 재배열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15권을 다 본 사람이라면 로마의 1천년 역사를 정리하는데 매우 유용할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시간을 적게 들이면서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교양을 쌓토록 해준다는 만족감, 즉 인풋 대비 효율 높은 아웃풋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00년 역사 로마에서 배우는 오픈 마인드의 로마인들,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습으로 진정한 지도층이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준 지배계급들, 왕정, 공화정, 제정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그들의 역사, 아테네의 민주정치와 비교하면서 민주정치는 자칫하면 우민정치로 빠지기 쉽다는 그 한계,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를 거치는 시기동안 지중해를 둘러싼 국가들간의 전쟁 양상 및 그 시간적 배열,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은 절대적 지도자가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 기독교가 존재하지 않은 로마에서 훨씬 더 인간사회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저자의 생각, 물론 독자들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시오노 나나미의 시각에서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지성을 갖춰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하고 좋은 평판을 받았던 인물이라 하더라도 '시오노 나나미 생각 필터'를 거치면 인간적인 한계를 명백히 드러내는 한 초라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팍스 로마나와 팍스 아메리카나의 차이는 뭘까? 로마는 자신들의 사회구조는 물론 다른 사회구조도 전부 받아 들였지만, 미국은 민주주의가 아닌 것들은 전부 배척한다는 점이다. 기독교가 나타난 이래 암흑의 중세가 왔던 것은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기독교의 성향 때문이라고 저자는 생각하는 듯 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오픈마인드로 내가 아닌 다른 것도 존중할 수 있는 자세가 진정한 팍스로마나를 만들었고, 동시에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로마 숭배적인 저자의 생각관이, 지나치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로마만이 옳다는 한계를 드러내 결국 중세 기독교 시대를 살던 성직자들의 꽉 막힌 사고방식과 별반 다를게 없지 않나는 생각으로 웃음짓게 만들기는 하지만, 1937년의 71세를 넘기고 있는 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반평생을 로마에 푹 빠져 살은 분이니 관대하게 봐 드려야 하지 않을까^^ 아니, 15권을 다 보지 않아도 로마에 대한 간단한 교양을 쉽게 쌓도록 해준 저자의 노고에 오히려 감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