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철학의 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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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르크스에 대해 알고 있는 바는,
공산주의 국가에 사상적 틀을 제공한 사회주의 사상가. 절친한 친구로는 엥겔스가 있음.
니체에 대해 알고 있는 바는,
여자들이 득실한 집안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소심한 천재. 죽기 전 11년 동안은 자신이 신이라고 말하며 미쳐서 지냈음.
프로이트에 대해 알고 있는 바는,
정신분석학자. 의사였음. 모든 인간의 심리를 성욕에 빗대어 묘사함. 대표적인 단어로는 리비도가 있음.
이 정도였다. 아마 이 정도가 나뿐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보일 것이다. 즉,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는 철학자가 아니었고 니체만이 근대 철학의 문을 여는 대표 철학자일 뿐이다. 그런데 이 세명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다소 궁금해졌다. 강영계 교수가 쓴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철학의 끌림]을 보면 해답이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중간에 한 사람만 읽는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끝까지 다 읽어야 비로소 저자가 발견한 세명의 공통점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이 책은 마르크스와 니체, 프로이트의 개인적 삶의 여정을 '간략히' 알려주는 전기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그들이 세상에 영향을 미쳤던 사상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대강'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그들의 개인적 삶, 사상, 철학을 알고는 싶었는데 그 양量이 어마어마하여 감히 시도를 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개념을 잡기에는 무척 재미있을 것이다. 그들이 세상에 미친 위상에 비해 너무도 인간적이고 헛점투성이였던 개인사를 보면 좀 친근감도 들고 약간 얕잡아보는 마음도 들 수 있으니 흥미롭지 않은가. 위대한 사상가의 헛점에서 비치는 인간미를 즐기는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관심사일 것이다. 강영계라는 교수는 정년퇴임의 나이인 듯 한데, 학술적이고 딱딱한 종류의 책이 아니라 적당한 유머와 많은 사람들이 다가올 수 있는 문체를 사용하여 가볍게 '이야기 하듯' 글을 썼다. 그 나이에 이런 대중적인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딱딱한 학술에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평소에 쉬운 책을 많이 읽고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살짝 존경심도 들고 친해지고 싶기도 하다.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
사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르크스에 대한 호감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바로 이웃에 공산국가를 두고 있는 나라의 일원으로서 알게 모르게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현대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한 사람이라는 말에 별로 동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미 소련은 몰락했고 공산주의는 모순이 드러나 붕괴된지 오래다. 마르크스 주의는 한 때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은 확실히 아니다. 몇 백년이 더 지나면 역사에 잠깐 이름이 등장하고 마는 정도의(즉 별 볼일 없는) 인물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을 아는 것은 의미가 있다. 세상에 어떤 사상이나 주의든 완벽한 것은 없고 시간이 지나면 모순이 드러나며 위에서 군림하려는 자들이 속출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마르크스가 펼친 과학적 사회주의에 의한 재산의 평등은 부익부 빈익빈 사회에서 복지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사상적 기반이 되어주고 있다는 시점에서 그의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제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오는 사이에 이 만인의 재산적 평등을 주창한 사상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사회는 또 한번 피를 보는 혁명을 일으켜가며 사회를 개혁해야 했을지 모른다. 그는 그의 대표 저서 '포이어바흐 테제'에서 지금까지의 철학은 세상을 해석하기에 급급했다며 이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철학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 그가 어쩌면 그렇게 사유재산을 없애고 평등을 주장한 것은 그의 일생을 따라다닌 가난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사실 든다.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궁핍 그 자체였다. 사상을 펼치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마르크스였으나 가정적인 생활을 봤을 때에는 일개 무능하고 병약한 가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아내 예니는 마르크스보다 훨씬 부유했던 자제의 규수로서, 살짝 동정심을 담아 표현하자면 남자 잘못만났다. 공주님처럼 살다가 무능한 남자를 만나 병을 달고 살고, 돈을 빌리러 전당포에 들락날락해야 했던 예니. 게다가 평생을 함께 살았던 하녀 한나의 자식도 사실 마르크스의 자식이었단 것을 예니가 몰랐을리도 없다. 마르크스 가족에게 평생 경제적 지원을 해주었던 엥겔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르크스의 명예를 생각해서 그의 사후에 사실을 밝혔으니 말이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인 것은 엥겔스라는 평생의 경제적 후원자가 있어줬다는 사실이고, 엥겔스는 그래도 사회에 눈이 밝아 돈을 버는 능력이 꽤 있었다는 거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니체는 워낙 유명하니까 별 말이 필요없지만, 그래도 가장 유명한 저서는 역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이 책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사상을 핵심개념을 사용하여 시적인 언어로 웅장하게 표현한 책이다. 시적인 문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 할 뿐더러 함축하는 의미조차 잘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중간에 포기하게 되고 말지만 저자가 이 책과, 니체 사상 전반에 걸친 핵심 사상-초인, 영원회귀, 허무주의, 운명해, 힘에의 의지-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꽤 도움된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신은 죽었다'고 말하면서, 인간은 신에 의지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여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사람을 초인超人이라고 말한다.(독일어로는 위버멘쉬인데, 저자는 초인이라는 개념이 마치 슈퍼맨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싫어하고, 위버멘쉬라는 원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여기서 니체와 마르크스의 차이를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갖지 않는 하향평준화를 꾀했다면, 니체는 모든 사람들이 신을 뛰어넘는 상향평준화를 꾀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런 니체를 엘리트주의자라고 말한다.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니체의 인생 말기 작품이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인데, 저자는 루와 니체의 관계를 매우 짧게 언급하고 '우정'이라는 단어로 치부해버린다는 점이 의외다. 루가 그 당시 꽤 많은 유명인(남자)과 사귀고 지적교류를 함과 동시에 많은 이들의 삶에 파격적인 영향력을 제시한 인물이라는 점을 볼때, 저자도 루 살로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럴만도 하다. 루와 교제하다 버림받았던 남자들 중 상당수가 자살을 했거나 평생을 후유증에 살아야 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니체를 좋아하는 저자의 입장에서 그를 다른 평범한 남자들처럼 루에게 휘둘린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루가 니체와 교제한 기간은 비록 짧았지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나오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역시 루에게 버림받고 나서임을 생각해보면 역시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실제로 니체의 동생 엘리자베스는 일평생을 루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며 루는 마녀라고 말하고 다닌 엘리자베스의 질투심과 독기도 유명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로이트 역시 루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하나다. 실제로 그는 루가 정신적 교류를 한 마지막 즈음의 사람이기도 하고, 그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도 했으며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루의 사진이 항상 놓여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이트가 그의 부인과 이혼을 했다거나 사이가 삐걱거렸다는 소리는 없지만 프로이트에 관한 개인사는 생각보다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 자신이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기를 꺼려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알려고 하는것도 예의는 아니다. 다만 그가 일생을 걸쳐 연구한 업적과 그 업적이 후대에 미친 영향만 알기에도 벅차다.
프로이트가 현재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껏 애써 그를 외면하고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은 것은 그가 펼친 생각들이 꽤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욕구를 성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그의 주장은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그의 주 사상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나 엘렉트라 컴플렉스만 봐도 나와 맞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아빠보다 엄마를 좋아하는 딸도 분명 많을 것이고, 엄마보다 아빠를 사랑하는 아들도 있을 것인데 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컴플렉스는 지나친 이분법이었다. 사람이 본능적으로 무조건 이성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가 보편적이었던 세상은 설명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이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것은 아닌 것이 그것 말고도 다른 것들은 인간 생활의 보편성에 적합하고, 그리하여 정신 치료에 많이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정신-신경치료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 여전히 백년 전의 프로이트 이론이라면 배척해서는 안된다.
무조건 그의 이론이 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다른 철학자들처럼 세상을 뒤짚을 만한 개념을 하나 제시했는데, 그건 바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다. 그는 사람의 정신과정을 자아, 원초아, 초자아로 구분하는데 이때 자아가 의식의 부분이고 원초아와 초자아가 무의식의 부분이다. 여기서 그의 이론이 지금까지의 철학과 획기적으로 달라진다. 지금까지 철학의 역사는 자아 즉, 의식의 부분만 다루었다. 몇 천년 철학의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이성을 우선시 하고 자아의 부분만 탐색하며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의식이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사람의 정신은 의식이 전부가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을 합한 것인데, 무의식의 부분이야말로 빙산의 본체이며 정신의 크기라고 말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지금껏 몇 천년에 걸쳐 쌓아온 것은 결국 빙산의 일각에서 아등바등 한 전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통할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초자연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인간은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을까? 무의식이 훨씬 큰 빙산의 본체인데.
그럼 프로이트가 마르크스, 니체와 한통속으로 묶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야 할텐데 그건 뭘까. 저자가 이 세명에게서 궁극적으로 찾아낸 공통점이 조금씩 짐작이 간다. 그건 그들이 지금까지의 사상이나 지배철학을 뒤집어 엎고, 전혀 다른 종류의 생각을 제시했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한차원 높이고자 노력했다는 점에 있다. 마르크스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을 분석하기만 하는 철학이 아닌 세상을 바꾸는 철학을 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이 세 명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의사였다고 말하고도 싶지만 그의 인생 후기쯤에 들면서 이론이 다분히 철학적 양상을 띄고 있었고, 또 현대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한데 묶어 생각해도 될 듯하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면 안되고, 이론과 현실이 불일치해서도 안된다. 또 지식이 실생활에 전혀 효용이 없는 것이어서도 안된다. 중세에 철학이 신학의 시녀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학이 철학보다 인간의 정신 안정을 이룩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철학이 신학보다 사람들의 심적안정을 꾀하는 존재였다면 신학의 시녀 취급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대 들어서 개인이 강화되고 각자의 위치를 스스로 찾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앞선 시대를 산 사람들의 정신적 산물을 잘 활용해서 보다 나은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런, 너무 모범생틱한 결론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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