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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시간투자계획 지침서? - 타임 패러독스

gowooni1 2008. 12. 31. 11:14

 

 

 

타임 패러독스

저자 필립 짐바르도  역자 오정아  공저자 존 보이드  원저자 Zimbardo, Philip  
출판사 미디어윌   발간일 2008.11.20
책소개 언젠가 당신의 시간은 끝이 난다! 시간과 삶의 연관성을 탐색하며 얻어낸 '시간 심리 과학' 『T...

 


 

벤자민 프랭클린인지, 벤자민 디즈레일리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이 둘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시간은 돈이다.

 

물론 시간과 돈은 다르다. 둘 다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은 돈보다 몇 백배나 훨씬 중요하다. 아니, 몇 백배가 아니다. 몇 천배이다.

 

시간은 저축성이 제로다. 예전이라면 절대 저축을 할 수 없는 자원이 몇 가지는 더 있었을 것이다. 몇 백년 전에는 태양이 없으면 어둠뿐이었지만, 요즘은 밤에 태양을 대체할 것이 많기도 하고 태양열 발전으로 그 에너지까지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대체가능한 것이 없고 저장 가능한 장치도 없다. 시간은 시간일 뿐이고, 싫든 좋든 우리는 항상 시간을 쓰면서 인생을 보내야만 한다. 냉동인간이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되어 인생 시간을 지연(delay)시킬수도 있겠지만 그건 단순히 물리적인 지연일 뿐이다. 돈은 저축하면 복리의 특성상 엄청나게 늘어나지만, 우리가 냉동인간으로 100년을 잠자고 있다고 깨어난다 해서 우리의 수명이 돈처럼 엄청나게 불어있는 것도 아니다.(아직 미래에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것 같다는 거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가진 전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한 순간이라는 시간과 바꾸고 싶다고 말할 만큼 시간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시간은 절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자원이다. 그래서 더 가치 있다. 젊다는 게 한 밑천이라는 말도 결국 시간만큼 최고의 재산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다. 이전에는 사회적 성공이라 말 할 수 있는 사람(물론 나보다 나이가 지긋하게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내가 그들보다 시간하나 만큼은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로 부러워하지 않을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외부적 성공과 내 나이를 바꾸라면 나는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확실성, 안전성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돈은 관리하면 확실히 저장도 되고 부풀기도 하지만 시간은 불확실한 측면이 많다. 그래서 재財테크는 하면서 시時테크는 하지 않는다. 현재 당장 받을 100만원의 돈과, 언제 받을지는 모르지만 미래에 받을 수 있는 1000만원의 돈 중에서는 확실히 받을 100만원을 선택한다. 자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버는 돈과 대학교를 졸업하고 버는 돈에 차이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들은 경제적 상황이나 여러가지 불안정한 상황을 고려하여 자식들이 고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이런 경향은 사는 수준이 나은 나라에서는 없어지고 있다) 즉각적인 만족과 딜레이된 만족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인 만족을 택한다.

 

'타임 패러독스'를 지은 두 저자, 필립 짐바르도와 존 보이드의 말을 빌리자면 즉각적인 만족을 택하는 사람은 현재지향적인 사람들이고, 딜레이된 만족을 택하는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그들은 사람에게는 각자의 시간관이 있다고 말하면서 대략적인 시간관을 몇가지 제시한다. 과거지향적, 현재지향적, 미래지향적, 초월적인 미래지향적이다. 이를 상세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지향적 시간관 - 과거긍정적, 과거부정적

현재지향적 시간관 - 현재쾌락적, 현재숙명론적

미래지향적 시간관

초월적인 미래지향적 시간관 

 

두 저자는 책의 첫 부분에서, 자신들은 30년간 시간에 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시간관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동시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재산에 대한 투자계획은 잘 세웠을지 몰라도 시간투자계획은 안 세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독자들의 시간투자계획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타임 패러독스'는 일종의 시간투자계획 지침서라고 말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무척이나 '혹~'한다. '그래 이것만 읽으면 나도 좀 더 시간투자계획을 제대로 세울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조금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시간투자계획 지침서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태클을 걸고 싶지 않지만, 일종의 카달로그와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은행이나 보험회사에서 자신들의 금융상품을 나열한 카달로그를 보면 각각의 상품을 소개하면서 장점을 나열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고객들은 그 카달로그를 보면서 각각 상품의 장단점을 비교분석해 가면서 자기에게 맞는 상품에 투자를 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 역시 위의 6가지 시간관이라는 상품을 제시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나열하는 것으로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467페이지의 꽤 두툼한 분량 중 상품소개에 상당량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상품소개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2부로 가면, 저자 각자의 경험을 참조하여 보다 효율적인 시간 사용방법을 삶의 여러 측면에서 알려준다. 은퇴후 시간은 어떻게 사용하면 효율적인지, 투자를 하려면 어느 시기가 적기인지,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1부에서 소개한 상품의 장단점을 통해, 각각의 장점만 받아들이면서 좀 더 행복하고 효율적인 인생을 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현재를 무시하거나 현재의 행복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 시간의 압박에 쫓겨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긴 하지만 미래를 확실히 추구하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딜레이된 만족을 즐기며 현재에 안주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성공을 할 수 밖에 없는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재지향적인 사람 중, 현재쾌락적인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간과 돈을 전부 현재의 즉각적인 쾌락을 위해서 쓴다. 인생은 즐기는 것이며 축제같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쾌활하고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며 파티를 좋아한다. 미래에 대한 대비는 별로 하지 않지만 그다지 걱정하지도 않는다. 미래에 어떤일이 닥치게 되더라도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마인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중에는 성공하는 삶이 별로 없다. 이들에게 미래의 성공과 그로인한 행복은 무의미하고 오직 현재의 행복과 쾌락이 최우선시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언제까지나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추세에 미래에 대한 대비가 없다면 노년에 가서 아무리 행복하려해도 불행해질수밖에 없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 저자가 노리는 것이 각 상품의 장단점을 설명해 주면서 자신에게 맞는 시간관을 선택 확립하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두 저자가 심어준 생각관에 훈련당한 나는 내 방식대로 이런 결론을 내릴수 있겠다.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인 나는 현재를 무시하는 경향과 동시에 시간압박에 시달리곤 하는데 이래서는 안되겠다. 현재쾌락적인 사람의 장점을 본받아 현재를 즐기는 성향을 본받아야겠다. 어차피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쓸데없이 시간압박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한번에 하나씩 몰입하여 일을 즐겨야겠다. 그렇게 하나씩 몰입하여 즐기는 동시에 그 일들이 내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도록 하는 긍정적 현재쾌락적 + 긍정적 미래지향적인 컨셉의 삶을 살아야 겠다.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게 나만 그런게 아니라 이 책의 모든 독자를 위한 결론일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저자가 그렇게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의 시간관을 첨가하자면 과거긍정적 + 현재긍정적 + 미래긍정적 시간을 혼합한 것이라는 정도다. 결국, 각 시간관의 장점만 골라 체득하여 가장 보람찬 시간투자계획을 세우자는게 요지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첫 부분에서 저자들과 추천한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놔서 그런지 결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기분이 크다. 만만치 않은 두께와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책의 가격은 내 기대를 더욱 부풀려 버려서 사실 실망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좋은 점도 찾아보자면, 사람들이 각자 소유하고 있는 시간관을 분석하고 그 장단점을 알기 쉽게 해준것, 그로 인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해준 점이다. 항상 약속시간에 늦는 친구들에게 짜증낼 것이 아니라, 이 친구는 현재숙명론적인 삶을 살고 있구나, 현재 쾌락적인 사람이구나, 라면서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이 생겼다고나 할까. 조금 쌩뚱맞지만, 역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중심적인 아집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깊이가 생길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