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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는 바르셀로나에서 행복을 찾았을까?

gowooni1 2008. 12. 30. 10:26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저자 오영욱  
출판사 예담   발간일 2006.07.25
책소개 독특한 감수성을 품은 그림과 서정적인 여백을 품은 글을 담은, 오영욱의 스페인 체류기. '우연히 발...

사실, 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매니아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가 1~2년 후에 생긴다는 소리를 듣고 심각하게 고등학교 재수를 고려한 적도 있다. 현실과 타협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예체능으로 바꾸어 애니메이션 학과가 있는 대학교에 가려고 했으나 다시 한 번 현실과 더 타협했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그냥 매니아 선에서 그쳐야 했다. 지금도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왜 애니메이션의 길로 가고 있지 않은가에 의아해 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내 이미지는 오타쿠 수준이다.

 

비록 만화라는 장르이긴 하지만 나름 좋아하는 그림의 엄격한 기준이 있다.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다) 적당한 성의와 수식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 첫번째 기준이었는데, 인물에 특히 신경을 쓰는 그림이어야 내 기준을 통과할 수 있었다. 데즈카 오사무는 좋아해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별로 안 좋아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그건 대학교 입학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보다보니 사라졌다. 현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 되었고, 그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강풀만화에서부터 검정고무신, 도라에몽까지 모두 좋아한다. 그러니까, 그림에서의 까탈스러움은 더이상 부리지 않는다.

 

그렇게 오픈마인드가 되고 보니 세상에 재미있는 만화와 그림이 너무 많아져서 신이 났다. 왜 예전에는 그렇게 편협한 마음으로 이런 것들을 즐기지 못했는지. 그러다가 이번에 내 손에 들어온 책은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였다.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선물해주면서 유럽 배낭 여행의 불씨를 던져준 친구가 또 한번 추천해준 책이다. 아주 꼭 보라고 난리를 부려서, 몇 달을 밍기적 거리며 외면하고 있다가 겨우 봤는데, 아, 이건 정말 대단했다. 뭐가 대단하냐면, 먼 북소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여행에 대한 불씨를 한껏 당겨주는 데에 대단한 책이란 말이다. 물론 오기사가 하루키보다는 나와 공통되는게 많기 때문일 수도. 한국인이고, 하루키보다 나이차이도 안나고 등등. 그냥 여행을 하고 싶은것이 아니라, 머무는 여행, 그곳의 사람이 되어 문화를 체득하는 여행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너무 유명해서 내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하자면, 오영욱이라는 사람이 잘 다니던 건설회사 때려치우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해외도피자금으로 1년간 바르셀로나에 체류하며 쓴 사색, 그림, 만화 등을 한권의 책으로 모아 낸 것이다. 그림은 다분히 예술적이다. 삐뚤빼뚤한 곡선과 약간 맞지 않는 원근법, 세세한 것은 무시하는 듯 하면서도 알고 보면 전부 지면에 그려 넣었고 여백의 미를 한껏 살린 그림에 강조하고 싶은 것만 색을 넣었다. 그런 그림이야 그렇다 쳐도 나는 그의 그림 중, 사진과 함께 자신의 그림을 섞은 것들이 가장 마음에 든다. 왠지 더 운치가 있다. 다른 사람은 극히 정상적으로 그리면서 자기만은 가분수에 졸라맨 같은 몸으로 표현한 그림이 참으로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무엇을 하는 모습을 그리든 우습기 짝이 없어서 더 귀엽다.

 

나도 어디서 해외도피자금이 생겼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년만 유럽 지중해 연안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백조로 살면서, 내 인생을 유목민적으로 좀 더 가꿔보고 싶다. 그럼 나도 오기사처럼 이런 책을 쓸수도 있을지 모르고, 하루키처럼 상실의 시대라는 거작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어찌되었건, 오기사는 바르셀로나에서 행복을 찾은 것 같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