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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money)과 음식(food)으로 지배되는 21세기의 씁쓸한 현실

gowooni1 2008. 12. 23. 23:38

 

 

 

탐욕의 시대

저자 장 지글러  역자 양영란  원저자 Ziegler, Jean  
출판사 갈라파고스   발간일 2008.12.15
책소개 풍요가 넘쳐나는 시대에 당신의 호주머니가 텅 비어가는 까닭은 무엇인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있다. 종류는 시츄이고, 이름은 쵸코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어 데려온 쵸코는 완전히 우리 식구가 다 되어서 나는 가끔 사람의 영혼을 가진 동물일 뿐이라는 착각마저 든다. 그러나 착각은 착각일 뿐, 쵸코는 엄연히 개이다. 쵸코 이 전에 5~6마리의 개를 키웠는데 그 중에 절반 이상은 쵸코와 같은 시츄였다. 그 개들은 종류만 같은게 아니라 재롱을 피우는 모습도 비슷했고 하루를 보내는 그들의 일상도 다를게 없었다. 오늘의 쵸코가 어제의 쵸코보다 조금 더 발전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 집에서 살고 있는 시츄와 1000년 전, 중국 어느 귀족 아내가 키웠을 시츄의 생활이 다를 거라고도 기대하지 않는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려고 노력하는 인간과는 달리 개는 동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물론 동물이지만 그들과 다른 이유는 이성을 이용해 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데에 있다.(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오늘날 한국을 살고 있는 나는 천 년전 한반도에 살고 있던 고려인에 비해 훨씬 괜찮은 생활을 하고 있다. 24시간 책을 읽을 수 있는 밝음, 바깥의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같은 기온을 유지하는 따뜻한 방, 비교적 치안이 잘 된 지역에서 여자 혼자 늦은 시간 외출해도 별 걱정없는 동네, 유리벽이 있을지는 몰라도 법적으로 모든 이의 인권이 평등하게 보장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사람들이 개혁하고 발전하여 후세의 사람들에게 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아도 항상 그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성향은 미래 더 괜찮은, 사람이 더 사람답게 살만한 사회를 만들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그 사이에는 많은 희생과 시행착오가 있어야 했다. 봉건주의에 반대하는 혁명, 방임정부의 부작용, 공산주의의 모순 등등. 1789년 7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인류는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인권을 보편적으로 획득하는데 성공했고, 산업혁명, 양차 세계대전 등의 사건을 통해 체제를 바꿔가고 모순된 부분은 고쳐가며 사회를 변화시켰다. 체제가 처음 바뀔 때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부작용이 생겨난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그 부작용들을 고쳐가며 더 나은 체제를 구축해왔다. 그렇게 고쳐나가는 역사의 길 위에 있는 것이 현재 인류가 살고 있는 체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 인류가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최고고, 자본주의가 제일이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야말로 최고로 발달하여 더 이상 발전할 것이 없는 이상적인 체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 나도 지금껏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또 우리가 어릴적부터 은근히 그런 식으로 세뇌하는 교육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지상주의가 최고라고 우겨온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사실 나도 이 이상으로 괜찮은 체제들이 뭐가 있을지 잘 모르겠고, 역사를 비추어 봤을 때 그나마 가장 업그레이드 된 모습이 이 체제들 임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모습이 최고라는 생각은 조금 비난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매우 이상적인 체제가 있어서 그것이 영구히 지속되면 최고겠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이상적인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현 모습에서 문제점이 발생했다면 근본 원인을 찾아 고쳐나가야 한다. 이미 전 세계는 우리가 추구해온 체제들만으로 영위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 체제들을 고집하기에는 타임오버다.

 

200년 전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하나의 측면만 보자. 1%도 되지 않는 귀족이 97%의 부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금은 99%의 일반 국민들에게만 징수해댔다. 없는데서 내라니 착취가 될 수밖에 없고 많은 국민들이 아사했다. 뿌리까지 썩은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은 혁명 하나 뿐이었다.

그로부터 2세기가 지난 현재 상황은 좀 어떨까? 프랑스 사람들은 좀 괜찮을까? 물론 괜찮다. 프랑스는 최강대국 중 하나고 국민들도 가장 잘 사는 나라중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일어나 자신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제는 시각을 프랑스 안에서만 국한시키면 안된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일상화 된 21세기에는 전 세계를 한 눈으로 아울러 봐야 한다. 그런데 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를 보고 있자면, 2세기 전의 프랑스 국내 사정이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전 세계의 1% 사람들이 96%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 몇개 안되는 다국적기업들이 전 세계56%의 부를 생산해내고 있다. 인류는 많은 피를 쏟아내며 겨우 봉건주의에서 벗어났는데, 세계화를 지상하는 다국적기업들-신흥 봉건세력들에 의해 재봉건화 되고 있다. 부채라는 새로운 형태의 신분측정시스템이 도입되었을 뿐이다. 세계 총 인구 40%가 굶주림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세계 192개국 중 122개국이 남반구에 몰려있고, 굶어 죽는 대부분의 인구는 남반구 122개국 제 3세계 국민들이다.

 

탐욕의 시대를 보고 있자면 엄청난 통계와 몰랐던 사실들에 입이 떡 벌어진다. 내가 모르던 세계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그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극히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란다. 지구상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런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기절할 정도다. 지구촌이 하나의 마을이라면 두 집 걸러 한 집은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산다는 거다. 서울이라면 쥐들의 서식처인 지하 상하수도 공간이 어떤 나라에서는 사람들의 밀도 높은 서식처다.(즉 그들은 서울의 쥐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피대상인 쓰레기처리장이 브라질리아에서는 먹을것과 고철덩어리가 나오는 고마운 삶의 터전이다. 쓰레기 처리장에서 나오는 먹을것이라! 말이 좋아 먹을 것이지 그 음식물 쓰레기는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정돈데 그들은 그것을 고마운 음식물로 받아 먹는다. 저자 장 지글러가 쓰레기 처리장 감독원에게 그 음식물 쓰레기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처음엔 우물쭈물하며 돼지먹이용이라고 말한다. 지글러가 자신의 신분(유엔 특별식량조사관)을 밝히며 사실대로 말하길 원하자 감독원은 수치스러워하며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고마운' 식량임을 암시해준다.(즉 그들은 한국의 돼지들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수치스러운 마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치심을 버리지 않으면 살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살 수 없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한다는 수준의 사치스러운 소리가 아니다. 그들은 수치심을 버리지 않으면 정말로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거다. 이 책의 원제는 '수치의 제국'이다. 수치스럽지만 수치심을 버리지 못하면 살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수치심을 끌어안은채 살아야 하는 그들. 그저 그들이 후진국이고, TV나 매스컴같은 언론의 권력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실상을 알리지도 못하고 죽은듯이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놀랍다. 아니 그런게 존재한다는 것도 모를것이고 설령 안다고 해도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내일 당장 굶어 죽지 않아야 한다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인권이나 자유는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나 한다는 소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계 여기저기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다른 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로 9.11 테러가 발생했고, 중동에는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굶주리는 인류는 6억명대에서 8억명대로 증가했으며 아사하는 인구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식량은 더 많이 생산되는데 아이러니다.  세계 곡물 생산 최강국인 브라질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열심히 일하는 에티오피아 커피 농가의 농민들은 열심히 일하는데도 굶어 죽는다. 부채를 가진 나라는 점점 더 많은 부채를 떠안고 있다. 우리나라만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고 이게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에 위로라도 받아야 하는건지 씁쓸하기만 하다. 이런 현상들이 마치, 우리가 선택한 체제가 낡아서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들리는 경고처럼 들린다. 문제점이 있으면 빨리 발견하고 고쳐서 더 튼튼한 체제를 만들어나가야 할텐데 걱정이다. 2세기 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처럼 대대적인 유혈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전 세계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세계 구조를 고쳐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역사란, 답습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은 배우고 고칠 것은 미리 고쳐 나가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