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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여성의 이분법 : 절대사랑주의자 VS 일중독자 -이지연과 이지연

gowooni1 2008. 12. 12. 11:40

 

 

 

이지연과 이지연

저자 안은영  
출판사 P당   발간일 2008.08.20
책소개 스물일곱 이지연과 서른넷 이지연이 만났다! 이 시대 20~30대 여자들의 풍경을 담은 소설『이지연...

읽기 쉽고 가벼운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칙릿은 약간 다르다. 처음 접한 칙릿은 로렌 와이즈버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였는데, 그때는 이게 칙릿이란 거구나, 괜찮네, 읽어볼만 하네, 하며 좋아했다. 그러다 두 번째 칙릿으로 백영옥의 '스타일'을 읽고 나서는 조금 회의적이 되기 시작했다. 문체가 너무 가벼워 한 번 읽고 외면당하기 쉬운게 또 칙릿이구나 하고 알았다. 그저 재미만 있으면 무조건 좋아했던 내가, 점점 밑줄을 많이 그어가며 깨달을 부분이 많은 책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일'은 '아~'하고 무릎칠만한 부분이 한군데도 없어서 그랬나, 칙릿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지연과 이지연'은 그런 의미에서 조금 회의적으로 다가왔다. '여자생활백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 느끼겠지만 안은영 문체도 백영옥 문체가 가지는 그 가벼움과 별반 다르지 않을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 두 작가는 한 번 읽고 버려지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을 옹호하고 있는 듯하고, 나 역시 그런 글들이 주는 재미와 효용성을 톡톡히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건 칼럼같은 곳에서나 쓰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이유는 저자 서문의 한 문장이 나의 삐딱함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누군가 당신의 20대는 어땠나요? 하고 물어보는 것 만큼 무책임한 발언이 없다는 것이다. 글쎄, 무책임한 발언일까?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생각한다. 나의 대학생활은 괜찮았나, 회사생활은 어땠던가, 나의 2008년은 잘 보냈나,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미래를 연관시켜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지나 내가 더 이상 20대가 아닐때, 나의 20대는 어떠어떠했지, 라고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20대는 휘황찬란 했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어느때보다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성실했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무책임한 발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한번 살아보겠다는 저자, 1971년생으로 3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는 저자의 입장에서 본 20대의 이지연과, 30대의 이지연은 과연 어떤식으로 재조명되었을지 궁금했다. '이지연과 이지연'은 27세의 절대사랑주의자인 이지연과, 34세의 사랑보다는 일이 더 편해진 골드미스 이지연 두 사람의 입장을 오가며 쓴 소설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 내가 읽은 고작 하나의 칙릿 '스타일'하고 자꾸 비교가 되는데, 34세의 이지연은 한없이 냉소적으로 배배꼬인 심성이 '스타일' 주인공(이름은 기억이 안난다)과 오버랩되었다. 다소 우려되었던 건 아직 사회생활을 해보지 못한 20대의 여성들이 칙릿을 통해 이런 종류의 인물들을 자꾸 접하면서, 조직이란 공동체에서 인정받으며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사람이 저렇게 시니컬해지는 건가?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가질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건 그게 보통 사실이라는 거다. 씁쓸한 현실을 대변하여 미리 마음가짐을 단단히 할 수 있다는 점은 하나의 장점일수도 있겠다. 34살의 이지연보다는 27살의 이지연이 내게는 더 친숙하게 다가왔는데, 이 역시 전적으로 내 이야기야! 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어리숙하고 바보같은)인물이지만 그런 바보같은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심리의 발단은 어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던지라 27살의 이지연이 참 측은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34살 이지연이 27살 이지연의 전前 남자친구 김민석에게 한방 멋지게날리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 해주는 장면에서는 사뭇 통쾌했다. 이 소설은 불행한 해피엔딩이다. 27살 이지연은 다쳐서 더이상 요가로 밥벌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찾아 이탈리아로 요리유학을 떠나고, 34살 이지연은 일중독자로서 조기폐경증세를 보이지만 다시 한 번 마음 깊은 곳에서 아릿한 감정을 자아내는 사랑이 다가오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분명 두 주인공의 처지는 불행했지만, 전화위복된 결말로 흐뭇함을 자아낸다.

 

절대 일중독자는 되지 말아야지, 바보같은 사랑은 하지 않겠어,같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이 대한민국 미혼여성들을 얼마만큼 공감시킬 수 있는지도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이지연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서로에게 거리감과 동료애를 함께 느끼는 그 둘의 묘한 관계가 보기 좋았다. 처음에는 거리감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탐색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이름아래 동질감으로 받아들이는 두 여자. 나에게도 '친근한 거리감'을 느낄수 있는 관계,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같은 편이라고 생각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