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과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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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고 가벼운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칙릿은 약간 다르다. 처음 접한 칙릿은 로렌 와이즈버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였는데, 그때는 이게 칙릿이란 거구나, 괜찮네, 읽어볼만 하네, 하며 좋아했다. 그러다 두 번째 칙릿으로 백영옥의 '스타일'을 읽고 나서는 조금 회의적이 되기 시작했다. 문체가 너무 가벼워 한 번 읽고 외면당하기 쉬운게 또 칙릿이구나 하고 알았다. 그저 재미만 있으면 무조건 좋아했던 내가, 점점 밑줄을 많이 그어가며 깨달을 부분이 많은 책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일'은 '아~'하고 무릎칠만한 부분이 한군데도 없어서 그랬나, 칙릿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지연과 이지연'은 그런 의미에서 조금 회의적으로 다가왔다. '여자생활백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 느끼겠지만 안은영 문체도 백영옥 문체가 가지는 그 가벼움과 별반 다르지 않을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 두 작가는 한 번 읽고 버려지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을 옹호하고 있는 듯하고, 나 역시 그런 글들이 주는 재미와 효용성을 톡톡히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건 칼럼같은 곳에서나 쓰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이유는 저자 서문의 한 문장이 나의 삐딱함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누군가 당신의 20대는 어땠나요? 하고 물어보는 것 만큼 무책임한 발언이 없다는 것이다. 글쎄, 무책임한 발언일까?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생각한다. 나의 대학생활은 괜찮았나, 회사생활은 어땠던가, 나의 2008년은 잘 보냈나,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미래를 연관시켜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지나 내가 더 이상 20대가 아닐때, 나의 20대는 어떠어떠했지, 라고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20대는 휘황찬란 했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어느때보다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성실했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무책임한 발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한번 살아보겠다는 저자, 1971년생으로 3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는 저자의 입장에서 본 20대의 이지연과, 30대의 이지연은 과연 어떤식으로 재조명되었을지 궁금했다. '이지연과 이지연'은 27세의 절대사랑주의자인 이지연과, 34세의 사랑보다는 일이 더 편해진 골드미스 이지연 두 사람의 입장을 오가며 쓴 소설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 내가 읽은 고작 하나의 칙릿 '스타일'하고 자꾸 비교가 되는데, 34세의 이지연은 한없이 냉소적으로 배배꼬인 심성이 '스타일' 주인공(이름은 기억이 안난다)과 오버랩되었다. 다소 우려되었던 건 아직 사회생활을 해보지 못한 20대의 여성들이 칙릿을 통해 이런 종류의 인물들을 자꾸 접하면서, 조직이란 공동체에서 인정받으며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사람이 저렇게 시니컬해지는 건가?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가질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건 그게 보통 사실이라는 거다. 씁쓸한 현실을 대변하여 미리 마음가짐을 단단히 할 수 있다는 점은 하나의 장점일수도 있겠다. 34살의 이지연보다는 27살의 이지연이 내게는 더 친숙하게 다가왔는데, 이 역시 전적으로 내 이야기야! 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어리숙하고 바보같은)인물이지만 그런 바보같은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심리의 발단은 어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던지라 27살의 이지연이 참 측은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34살 이지연이 27살 이지연의 전前 남자친구 김민석에게 한방 멋지게날리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 해주는 장면에서는 사뭇 통쾌했다. 이 소설은 불행한 해피엔딩이다. 27살 이지연은 다쳐서 더이상 요가로 밥벌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찾아 이탈리아로 요리유학을 떠나고, 34살 이지연은 일중독자로서 조기폐경증세를 보이지만 다시 한 번 마음 깊은 곳에서 아릿한 감정을 자아내는 사랑이 다가오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분명 두 주인공의 처지는 불행했지만, 전화위복된 결말로 흐뭇함을 자아낸다.
절대 일중독자는 되지 말아야지, 바보같은 사랑은 하지 않겠어,같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이 대한민국 미혼여성들을 얼마만큼 공감시킬 수 있는지도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이지연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서로에게 거리감과 동료애를 함께 느끼는 그 둘의 묘한 관계가 보기 좋았다. 처음에는 거리감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탐색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이름아래 동질감으로 받아들이는 두 여자. 나에게도 '친근한 거리감'을 느낄수 있는 관계,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같은 편이라고 생각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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