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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사랑도 비정상적인 사랑은 없다 : 도쿄타워-에쿠니 가오리

gowooni1 2008. 12. 10. 11:45

 

 

 

도쿄 타워

저자 에쿠니 가오리  역자 신유희  
출판사 소담출판사   발간일 2005.10.20
책소개 세련된 문체와 투명한 감수성으로 잘 알려진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도쿄 타워가 지켜봐 주는 장...

소설은 한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알고 있다. 소설을 통해서 나와는 다른 시대를 살던 사람,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다른 생각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것이 얼마만큼의 진실과 얼마만큼의 허구를 섞어 놓았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살면서 주어진 시간과 환경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만날수 있는 사람도 제한될수밖에 없고, 따라서 소설로서 더 많은 사람을, 거창하게 말하면 인류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한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아는것도 아닌데, 그녀가 쓰는 소설이 좋아서 그녀가 좋아져버렸다. 그녀의 글이 만들어내는 묘하게 염세적이고, 시니컬하면서 잔잔하게 명랑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녀의 글을 보고 있자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체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체념의 사전적 의미는 희망을 버리고 단념함이다. 희망을 버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버리고 단념해야 할 때가 인생중에는 분명, 종종 발생한다. 깨끗하게 체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지녀야 할 매우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다. 버릴건 버리고 단념하되 명랑함을 잃지 않는것. 그녀의 소설속 한 인물이 그런 자질을 가진것도 아닌데, 그냥 소설 전체에서 그런 말을 뿜어내는 듯하다. 처음에는 대체 왜 그런지 몰랐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일본인 특유의 기질,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성격에서 그런 분위기기 풍겨져 나오는 것 같다.

 

도쿄타워의 제목은 단지 그 타워가 보이는 곳이 소설의 배경이 되기 때문일 뿐이고, 그 배경 아래 두 명의 남자, 토오루와 코우지가 등장한다. 스무살의 앳된 소년들이지만 둘은 상반된다. 토오루는 20살 연상의 시후미를 통해 세상을 보고 사랑을 알아가며 시후미가 없으면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순수한 사랑을 하지만, 코우지는 단지 연상이 편하고 좋아서 유부녀들과의 밀회를 즐기고 그 와중에도 유리라는 동갑내기 여자친구도 있다. 코우지에게 여성편력은 일종의 자부심이다. 결론부터 보자면 토오루는 시후미와 잘되지만 코우지는 두명 모두에게 차인다. 사실, 토오루와 시후미가 잘 된다고 말하는 것도 어찌보면 이상하다.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볼때 '잘 된다'는 것은 아마, 시후미가 남편과 이혼하고 토오루와 함께 살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입장에서 '잘 된다'는 것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편과도 헤어지지 않고, 토오루와도 헤어지지 않는다. 시후미에게 있어서 남편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고, 토오루는 이 지구상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어서 행복한 사람이다. 시후미를 통해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아를 보는 기분이었지만 시후미와 주인아는 다른 점이 있다. 시후미는 남편과 토오루 중 토오루를 더 사랑하는 것 같지만, 주인아는 두 남편을 동시에 비슷하게 사랑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시후미가 아니고 소설이 토오루 중심이기 때문에 시후미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내가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걸고 싶은 태클 하나. 그녀는 꽤나 비 정상적인 관계 그리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을 보고 있자면 '아니 정말 일본은 이렇단 말야?'라는 편견을 가지기 십상이다.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제 그녀의 소재 선택에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아직 잘 되지 않는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사랑이란 것에 나만의 편견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소설은 사람을 이해하는 길을 터주는 법. 이 소설들을 통해 주위에서 이런 사랑을 하고 있는 연인들을 만나더라도 색안경쓰지 않고 너그럽게 보는 눈을 키운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