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수동적인 독서가 가능한 멋진 작품,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gowooni1 2008. 11. 27. 23:13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저자 와타야 리사  역자 정유리  
출판사 황매   발간일 2004.02.28
책소개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보았을 법한 청춘 시절의 일상과 고뇌를 생생하게 그린 소설. 좋아하는 건지 미...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보러 돌아다니다가 아쿠타가와의 '라쇼몽'과,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함께 빌리게 되었다. 둘 다 제목은 어디서 들어봤는데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은 전혀 없이 한 번 재미로 읽어볼 요량이었다. 라쇼몽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깔끔하게 묘사된 단편이 마치 머릿속에 5분짜리 드라마라도 보는 기분을 주어서 감격했다. 진정한 단편이란 이래야지, 라고 생각하며 아쿠타가와라는 저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어린시절부터 스승인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지만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예술적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사람을 기리며 아쿠타가와 문학상까지 제정되었는데, 권위있는 상이라는 건 알겠지만 처음 들어본 나는 그 권위를 실감하지 못하였고 그저 우리나라의 이상문학상 정도인가 하고 지레짐작해 버리고 말았다. 아쿠타가와나 이상이나 둘 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에도 그 천재적 기질을 후대 사람들이 기리기 위해 문학상까지 제정했으니 동급으로 생각해 버리는 내 두뇌구조에 별로 의심은 들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읽기 시작했는데 우연찮게도 이 작품이 아쿠타가와 문학상 수상작품이라는 것이다. 주로 신인 문학작품에 주로 주는 모양이었다. 저자 와타야 리사는 17세에 입시에서 탈출하기 위해 쓴 '인스톨'로 화려하게 등단하고, 2년 후 이 작품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으로 아쿠타가와 상까지 거머쥔 혜성같은 문학소녀다. 그야말로 혜성같다는 표현만큼 그녀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것 같다. 1984년생인 그녀는 어린 10대의 눈을 그대로 살려서, 그 시각에서 주변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평범한 일상을 담담한 분위기로 그려내는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는 듯한 기분을 준다.

 

사람은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나, 그 나이에 맞는 생각을 하는 법이다. 그리고 10대의 나이에 그려진 이 작품 역시 어느 누구보다 10대의 고등학생 심리를 잘 파악하고 묘사하고 있다. 만약 와타야 리사가 20대에 접어들어 대학생의 신분을 갖게 되었을 때, 이만큼 고교생의 심리를 잘 파악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 그러나 유치하지 않다. 문장에 10대의 미성숙한 유치함이나, 쓸데없는 군더더기는 찾아 볼 수 없고 깔끔해서, 능동적으로 읽어 머릿속에 장면을 상상하는 여타 소설과는 달리 저절로 그 영상이 그려지고 몰입된다. 나는 분명 능동적인 책 읽기를 하고 있는데, 수동적인 영화감상을 하는 기분이 든다. 다 읽고 나서, 소설이라면 이래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물론 반드시 이런 형식의 소설만 소설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고, 그만큼 잘 쓰여진, 매끄러운 소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뭔가 교훈을 얻고 싶고, 작가만의 인생관이나 사고방식이 결부되어 다 읽고 난 후에 뭔가 남는것이 있기를 바라는 독자들은 크게 점수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확실히 이 책에 무게감이라든가, 교훈적인 내용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보통의 평범한 남녀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은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의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의 남자 한명과, 여자 한 명이 그 주인공이다. 남자주인공인 니나가와는 아웃사이더 기질만으로는 부족해 오타쿠 기질까지 더해져 있다. 여자 주인공 하츠는 억지로 자기를 버려가면서까지 남과의 동화를 꺼려하는 비사교적이고 반항적인 소녀지만, 그래도 자기는 니나가와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니나가와에게 이상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동료애도 아니고, 우월감도 아니고, 좋아하는 감정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친해지고 싶다는 감정 같으면서도,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묘한 감정을 이 책 제목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그 감정은 바로 '발로 차주고 싶은' 감정이다. 그리고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란, 움직이기 귀찮아 하며 고양이 등처럼 구부린 니나가와의 등짝을 바라보는 하츠의 시선이다. 하츠는 그 니나가와의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어한다. 실제로 소설속에서 하츠는 두 번이나 그의 등을 걷어차고는 매번 모른척 한다. 성장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크게 성장소설이라고 거창하게 말할것 까진 없다. 그러나 확실히 두 주인공은 소설안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하츠는, 비사교적임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몰라서 피했을 뿐, 실제로는 외부와의 소통을 바라고 있던 소녀로 자신도 그런 자기의 감정에 조금씩 솔직해져가고 있고, 니나가와 역시 올리짱이라는 자기만의 우상세계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둘 다, 자기만의 알이라는 조그만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영락없는 어린 십대들이다.

 

별로 남는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머릿속에서 영화같은 영상이 끊임없이 그려지는 소설을 그려내는 와타야 리사의 재능을 나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현재 와세다 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재학중이라는 그녀에게, 앞으로 무한한 성장을 하기를, 그리하여 더욱 괜찮다고 느껴지는, 작가와 함께 발전한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을 많이 내주길 은근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