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철학*문사철100

광신을 경계하라고 말한 흄 - 기적에 관하여 : 데이비드 흄

gowooni1 2008. 12. 9. 10:33

 

 

 

기적에 관하여(책세상문고고전의세계 28)

저자 데이비드 흄  역자 이태하  
출판사 책세상   발간일 2003.07.05
책소개 이 책은 기적을 '자연 법칙의 위반'으로 정의하고, 기적에 비판을 통해 미신과 광신을 거부하고 계시...

꼭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의 중도란 것을 지키며 살기 위해 애를 쓰기는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너무 가까워져서 업신여기는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너무 멀게 느껴져 애초에 친해지지도 못하면 안된다는 생각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먹는것, 자는것, 운동하는 것 역시 모두 '적절'하지 못하면 일상생활의 균형을 잡을 수도 없다. 책도 너무 많이 혹은 적게 읽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또 지나치게 한 쪽으로만 치우친 독서를 하는 것을 경계한다. 아직 철학 서적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을 적절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서양 철학 중에서는 대륙철학이라 불리는 프랑스*독일 철학과 영미철학을 적절히 병행하며 읽어야겠다고 느꼈다. 약간 대륙철학에 호감이 가던 이 때, 영미철학을 접해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고른 책이 데이비드 흄의 '기적에 관하여'이다. '기적에 관하여'를 고르게 된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첫째, 저자가 영국인이므로 일단 대륙철학은 아닐 거라는 점. 둘째, 두께가 얇다는 점. 그랬기 때문에 책의 구조나 개괄적인 내용을 읽어보지 않고 무조건 손에 집어 들었다. 제목만 봐서는 기적을 옹호하는 입장인지 거부하는 입장인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기적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여진 책일거라고 생각했다.(이런 생각은 데이비드 흄이 옛날 사람이고, 종교가 한창 중시되던 중세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기적옹호자중 하나일 것이라고 믿은, 전적인 내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책을 조금만 읽다보면 이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곧장 알 수 있다. 데이비드 흄은 이 책에서 기적을 자연법칙에 위반되는 '위반 기적'으로 한정지어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다.

 

흄이 경험을 중시하고 당시 종교적 신앙을 튼튼하게 지지해주던 기적을 비판하였다고 하여 회의론자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당연히 재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종교가 절대적으로 중요시되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정신적 삶을 이루는 신앙을 '경험'이라는 무기로 공격해오는 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흄에게 회의론자라는 오명을 씌웠는데 200년이 지난 요즘에 와서도 흄을 회의론자로 기억하고 있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흄의 기적에 대한 비판이 그다지 심각하다고 생각할 정도도 아니다. 분명 지나치게 경험을 중시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전적으로 배격하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관습적인 것, 자연적인 것에 대해서는 그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종교를 배척한다고는 볼 수 없다. 종교의 신앙을 이루는 기적에 대해서는 분명 비판적이지만, 종교가 오랜 세월에 걸쳐 관습적이고 자연적인, 사람 삶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종교 존재 자체에는 긍정적이다. 그가 비판하고자 한 것은 맹목적이고 자칫하면 광신적인 믿음으로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깨어있는 생각을 주어, 좀 더 계몽적인 삶을 살고 건전한 종교적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그를 창조적 회의론자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여전히 그가 회의론자라는 딱지를 버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살짝 삐딱해지지만 그래도 창조적이라는 간판을 하나 얻은 것에 대해서 만큼은 만족한다. 흄이 2세기나 뒤늦게 얻은 이런 간판 때문에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고 해서 흄을 옹호하는 입장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지나치게 경험적인 것만 중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터부시 하는 그의 입장에 약간 반감도 들었으며, 흄의 입장에 선 사람이라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극단적 문체를 구사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그가 이 책에서 사용한 예나 말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전적인 내 개인적 느낌일 뿐이다.) 기적에 관하여라는 논문 자체는 매우 짧으나, 이 책에는 흄의 입장을 비난하는 토마스 러더퍼드의 글과, 흄을 옹호하는 새뮤얼 빈스의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특히 흄의 글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철저하게 비난한 러더퍼드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그의 글 역시 크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는 절대적 신앙자로서의 논리를 나름대로 펼치고 있는데, 그가 내세운 논리의 전제 자체가 그리 납득할만하다고 할 수 없었다. 러더퍼드의 결론은 결국, 신이라는 더 큰 존재 안에서 발생하는 일을 경험이라는 훨씬 작은 존재로 납득하려 하느냐였다. 비유하자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물에서 일어나는 일만 봐서 어떻게 알겠느냐는 식이다. 그는 자신의 반박을 통해 흄이 떨어뜨린 기적의 위치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흄이 영국의 철학자라고 해서 영미철학의 근본을 이룬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 자신이 일단 프랑스로 철학 유학을 떠났던 사람이고, 그의 영향을 받아 독일 철학자인 칸트의 이론이 더 빛났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미철학이라 하면 크게 근대에 들어와서는 구조주의, 실증주의로 대표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긴, 경험을 중시한 흄이나, 과학적인 접근을 중시하는 실증주의도 어찌보면 같은 맥락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