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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가볍게 사귀고 싶다면 : 들뢰즈 - 박성수

gowooni1 2008. 12. 7. 20:53

 

 

 

들뢰즈(누구나 철학총서 3)

저자 박성수  
출판사 이룸   발간일 2006.06.29
책소개 들뢰즈의 영화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에 대한 분석을 다룬 책. '영화' 에서의...

책을 읽다보면 또 하나의 책을 소개받거나 색다른 저자를 알게된다. 게으름 피우면서 모르는척 하고 있으면 그런 책이나 저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책을 읽다보면 수없이 많은 가지가 쳐지기 때문에 바지런떨면서 그것들을 전부 추적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아니, 가능하긴 하겠지만 보통의 열정이나 시간가지고는 불가능하다. 그런 와중에도 꼭 반복되는 것들이 종종 있다. 이른바 '때'가 온다고나 할까. 평소에는 한번도 생각도 안했던 책이나 저자가 어떤 때가 오면 유달리도 많이, 활자의 모양을 빌려 내 눈앞에 나타난다. 그렇게 세번 네번을 소개받다보면 일종의 강박관념도 생긴다. 이거 지금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거 아닌가, 하고. 그리고 요즘 내게 있어서 그런 사람은 바로 '질 들뢰즈'였다.

 

들뢰즈라는 이름은 들어는 봤을지 몰라도 생소하기 그지 없었던 내가 어떤 용기로 이 사람을 이해해보고자 결심했냐하면, '들뢰즈적 책 읽기'. '들뢰즈식 생각하기'라는 말이 평소 읽던 책 중 자주 언급이 되기 때문이었다. 한 번 두 번 나오면 뭐 그러려니 하고 앞뒤 문맥에 따라 대충 이해하며 넘어가겠지만 자꾸 언급되니 왠지 '들뢰즈적 책 읽기'를 못하는 내가 참으로 바보같이 느껴져서, 개념이라도 알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들뢰즈는 내게 아직도 생소한 사람일 뿐이다. 하나의 철학책이 세상에 인정받기 시작하면 수없이 많은 새끼 지식들이 판을 치기 마련이다. 이 현상을 본좌에 앉은 철학자는 못마땅하게 여길지 몰라도 그에게 접근할 방법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런 새끼지식들에게 다가가기가 심리적으로 더 쉬운것 같다.(사실 이런건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나도 한번에 원저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 들일수밖에 없으니. 그 쉽다는 방법서설도 원저를 읽고, 이해판을 하나 더 읽은 후에야 이해했다) 박성수라는 교수가 쓰고, 이룸에서 '누구나 철학총서'라는 시리즈로 나온 '들뢰즈'는 이런 내가 첫번째로 만만하게 보고 공략한 대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만하게 볼 책은 절대 아니다.

 

이 세상에 철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있을지 모르겠다. (예를들어 인간은 왜 사는가, 왜 태어나는가,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등등.) 그러나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도구이자 종교이며 사상인 철학에서 그런 답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하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여태 그런 근본물음에 대한 답을 구할수 없었기 때문에 수천년에 걸쳐 그 역사를 이루고 있는 많은 철학자들이 의문을 다 풀지 못한채 죽어갔으니 말이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사유방법을 제시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들뢰즈 역시 그런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철학자 중 한명이며 특히 영화와 미학에서 자신의 방법을 개진하고 있다. 들뢰즈가 굳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시대적 필연일 것이다. 세상이 변하면서 사유하는 방법과 그 도구들도 함께 변천해야 하는데 우리는 몇 백년전 철학자들이 세운 방법에 의존하여 왔고, 이제 새로운 방법이 도래하고 세기가 바뀌었으니 그것들을 한껏 이용하여 새롭게 사유체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들뢰즈의 생각이다. 들뢰즈가 다른 어떤 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영화와 회화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자신의 철학세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저자역시 이것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들뢰즈는 그 시대 사람들이 그때까지 대중적이라 하여 무시했던 영화를 한층 높은 사유를 하는데 도구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질 들뢰즈가 서로 다른 영역을 접속시키는데 탁월한 사상가라고는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잘 모르겠고 그저 그 두 영역을 접속시키는데 끌어들인 개념이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에 나오는 개념의 응용이었다는 것은 잘 알겠다. 예를 들자면 그 중간부분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있고, 책상이 존재한다. 나와 책상은 전혀 상관없는 존재들이다. 공통점이 없다. 그러나 내가 책상을 손으로 만졌을 때, 이 전혀 다른 두 존재는 접촉하고 있다. 그리고 나와 책상 사이에는 촉감이라는 감각이 있다. 내가 손으로 책상을 만지면서 책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내 손이 어딘가에 맞닿아 있다는 감각을 알아채는 것. 이것이 바로 그 중간이라는 것이다.

 

사실, 너무 개괄적인 내용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해서 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더 알고 싶으면 역시 들뢰즈가 직접 쓴 책들을 몇권 더 반복해서 읽어보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강적 개념이라도 잡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할 만한하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이 떠오른다. 대체 '들뢰즈적 생각하기'나, '들뢰즈식 책읽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읽던 책의 앞뒤 문맥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어떤식으로 갖다 붙여야 들뢰즈식 책 읽기가 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