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철학*문사철100

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

gowooni1 2008. 9. 10. 00:59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 설상태 역 : 청목

 

요즘, 옛날에 사 두었으나 읽지 못한 책 또는 읽었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책을 전부 읽고 있는데, 사랑의 기술도 그 책 중 하나다. 구입한 날짜가 책에 찍혀 있는 것으로 봐선 2003년 12월 12일에 샀나 보다. 그런데 한번 읽고 햇빛도 못 본채 묵혀 있어서 마치 어제 사온 것마냥 새 책 같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무척 얇다. 얇은 책을 좋아하는 나는 일단 얇으면 이해가 가든 말든 읽어 보고야 만다. 물론 이 책도 한번은 다 읽었다. 그런데 어디 가서 '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읽었어'라고 절대 못 말하겠는 것이다. 당연하다. 내용이 내것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으니까.

 

5년전의 나는 사랑에 대해 아는게 지금보다 적었을 거다. 사실, 이 책이 사랑에 대한 경험이 반드시 전제 되어야 읽을 수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있는 편이 확실히 낫다. 그래야 프롬이 말하고 있는 게 뭔지 더 정확히 이해하고 각자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의 나는 이 책에서 별 도움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의 나에겐 확실히 도움이 된다. 너무 도움이 되어서 읽고, 또 읽고, 계속 읽고 싶다. 그렇게 반복해서 읽어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이다. 데미안 이후로 세번째로 나타난 내 정신적 바이블로 삼고 싶은 책이다.

 

사랑은 내 인생에 있어서 절대 가볍지 않은 주제이다. 내가 가끔 친구들에게 '내 인생에서 첫 번째 가치는 누가 뭐라 해도 사랑이야'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으레 이렇게 말한다. '응, 넌 정말 그런거 같아'.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는 내 첫 번째 가치가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연구해서 좀 더 나은 사랑의 모습을 구현하는데 내 인생을 좀 더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단도 직입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여기서 프롬이 말하는 사랑이란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완벽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정말 존재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는 거다. 그러나 이내 곧 정신을 차렸다. 원래 바이블은 완벽해야 하고, 인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항상 바이블을 찾고 길을 얻는 법이니까. 그래도 계속 읽으면서 또 한번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내가 지금껏 연애란 감정을 통해 느꼈던 사랑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이었는지, 얼마나 어린 사랑이었는지 하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 주는 내용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것 역시 곧장 정당화 시켰다. 그러니까 20대의 사랑인거지. 20대의 사랑과 30대의 사랑이 같을 수는 없고, 30대의 사랑과 50대의 사랑 역시 같은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이 더 나은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 나이대에 나누는 사랑의 모습은 다 매력적이고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열정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나이 대에 맞는 사랑의 모습 모두가 매력적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당연히 더 나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 아닌가. 최고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과 인내, 관심, 집중, 지식을 쌓는데 걸리는 시간등이 필요하듯 사랑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프롬의 이야기다. 사랑을 감정의 영역에만 놓고 수동적이 되지 말고 능동적이 되자는 것이다. 프롬은 첫 부분에서 바로 말한다.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다, 사랑스러워 지려고 하지 말고 사랑을 주려는 마음을 연마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나 사랑을 줄 수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쓰려면 지식이 차고 넘쳐 흘렀을 때에나 가능한 것처럼 사랑도 자신 안에서 차고 넘쳐야 남에게 줄 수 있는 법이다. 자신 안에서 사랑을 넘치게 하는 첫번째 방법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여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을 때야말로 남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고 사랑 하려는 자의 삶에 침투되어 관심을 표현 할 수 있다.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 않았을 때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확대 된 이기주의이다.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 보호, 관심, 존경, 인내이고, 이 중 존경은 특히 자신이 온전히 홀로 섰을 때 생길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자신의 이론을 간결 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놨다. 그렇다고 해서 한 번 읽어서는 어찌 저자의 의도를 전부 파악할 수 없다. 나는 이 책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보물 같은 진리들을 적어 보려다 그만 두었다. 책 자체가 매우 얇다는 것은 이미 축약하고 축약할 대로 농축된 엑기스이다. 그래서 두고 두고 가지고 다니면서 마음의 바이블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랑은 이타주의란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건 '나는 당신을 통해서 세상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참 멋진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롬의 정신분석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조금의 시간의 퇴색없이 받아들여 진다. 이런 책을 쓸 정도면 프롬 본인도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연구 했다는 뜻일 텐데 그럼 본인의 삶에서 사랑이란 부분은 완벽했을까? 궁금해졌다. 굳이 프롬의 인생을 시시콜콜따져 '그렇게 말하는 넌 완벽한 사랑을 하며 살았냐'라고 물으려는 게 아니라 이런 완벽한 이론의 사랑이 실제로도 존재했음을 믿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그러나 그만 두었다. 그냥 에리히 프롬의 사랑은 완벽 했겠지, 하고 믿기로 했다. 사실 그러지 못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내용이 퇴색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미 앙드레와 도린에게서 이런 마음-완벽한 사랑이 실재함을 믿고 싶은 마음-을 충족 받았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다.

 

이 책이 너무 간결하게 말해 놓아서 두 번 이상을 읽고 나서야 진가를 알게 되었다. 세 번째 읽었을 때, 책 곳곳에 있는 가슴 속에 새겨두고 싶은 말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하고 뒤늦게 파악했다. 정말 삶을 살아가면서 계속 머리속에 아로새기고 싶은 말이 많은 책을 발견 했을때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내 정신의 바이블로 삼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는 거다. 당분간 이 책은 내게서 떠나지 않을 모양이다. 그리고 아울러 프롬의 또 다른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