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1 : 나관중 : 이문열 역 : 민음사 : 398p
[도원에 피는 의]
연초에 항상 몇가지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11월 즈음이 되면 올해 계획한 것 중 몇가지를 어느정도 실행 했을까 하고 돌아보는데, 매년 미루게 되었던 계획이 하나있다. 그건 바로 '삼국지 읽기'였다. 몇 년 전, 삼국지를 5권 정도까지 읽은 기억은 나는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뿐더러 읽은 그 느낌마저 썩 재미있지는 않았기에 섣불리 손이 가지 않았다. 책이란 게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때가 있는 법이어서 언젠가 이 책이 내게 재미있게 와 닿는 날이 있겠지 하고 미루고 미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더 이상은 미뤄서는 안될것 같은 일종의 숙연함마저 드는지라 2008년 안에 이문열이 번역한 삼국지만이라도 봐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겨버렸다. (그 다음은 황석영 역 삼국지도 한번 볼 계획이다). 마침 도서관 서가에 항상 대출중이었던 이문열 삼국지 1권이 반납되어 제 자리에서 나를 반기고 있기에 기회다 싶어 재빨리 대출해왔다. 모든 대하소설이 그렇듯이 1권은 가장 인기가 있고, 언제나 대출중이며, 많은 손때가 타서 가장 지저분하고 너덜거린다. 내가 빌린 삼국지도 이미 책장마다 헤질대로 헤졌고, 겉표지는 2/5정도가 닳아 없어졌으며 차마 손으로 집고 싶지 않을만큼 지저분했지만 눈 딱 감고 빌렸다. 어차피 하루 정도만 투자하면 금방 읽을텐데 하고 빌린 삼국지는 여전히 대하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3일 넘는 시간을 요구해왔고, 이번만은 인내심을 가지고 10권을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꾸준히 읽었다. 읽다보니 몰입도가 생겨 속도도 붙고 몇 년전에는 느낄 수 없던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읽다 지쳤는데 이미 한 번 읽은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그런 지치는 과정없이 읽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1권은 대강 시대적 상황의 설명과 등장인물 성격묘사, 대체적으로 소설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에 대한 개요가 잡혀있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원술, 여포 정도가 소개된다. 물론 더 많은 등장인물이 있지만 지금 당장 기억나는 인물이 이정도일 뿐이다. 아마 2권 정도에서는 제갈량이 나올 것 같다. 한나라 멸망후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중국땅을 무대로 자신들의 야망을 펼치는 이야기인 삼국지연의는 200~300년 대즈음의(정확히는 모르겠다)97년간 이야기를 무수히 떠돌던 민간 이야기들을 적절히 결합하여 14세기 원나라의 나관중이 모아 지어낸 대하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소설의 무대가 너무 크고 등장인물이 워낙에 많아서 대강의 내용에 자세한 묘사나 설명이 있다기 보다는 주요 사건들을 술술 �고 지나가는 느낌이 크지만, 중요한 대목에서는 대하드라마의 한 장면이라도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인물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설명을 해놔서 재미가 있다. 예전에 내가 세상사를 크게 보는 안목이 없어서 재미를 못 느꼈다면, 지금은 그때에 비해 사람보는 눈이나 세상을 대하는 눈이 좀 자라났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공감을 하면서 읽을 수가 있어서 더 재미있을 수 있다. 굳이 어릴때 읽지 않아도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했다. 그동안 삼국지도 안 읽었다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불편했는데, 지금 읽으니 몇 년 전에 읽는 것보다 훨씬,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내 생각과 결합하여)얻어낼 수 있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한번 읽은 책이 재미없다고 그냥 던져버리면 안되겠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받고 있는 책은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단지 나하고 안 맞는다고 외면하기보다는 때가 되길 기다려 읽어야겠다는 오픈마인드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오늘 빌려온 2권은 다행스럽게도 매우 깨끗하다. 구입한지 얼마 안된 모양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2권도 탐독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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