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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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그에 반해 약간은 매니아틱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대중을 사로잡는 사람들의 글이 비교적 수월하게 읽히고 많은 배경지식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반면, 매니아틱한 글은 꽤 많은 스키마를 요구하고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맞어!'라는 공감대를 형성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구축한 정신세계의 일부를 살짝 보여준다. 그러면 저자와 뭔가 통했다고 생각한 독자들은 그들이 살짝 보여준 세계에 사정없이 빠져들고 만다. 살짝 보여줬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다. 우리가 본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매혹적인 세계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후자쪽 글을 쓰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책이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게다가 11명의 독서가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11명이 구축한 세계의 일면과 저자 정혜윤이 구축한 세계 총 12세계가 한권의 책에 모여있다. 그만큼 깊이는 없지만 오히려 살짝 엿볼 수 있어서일까, 더 많은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고 매력적인 책이 되어버렸다. 한 사람씩 읽을때마다 어쩜 이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잘 구축했을까 하는 경외감과 동시에 이들이 구축할 수 있던 세계의 밑바탕에는 어떤 책들이 존재하고 있을까, 그들이 읽었던 책들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들의 사고방식의 역사는 어떻게 변천되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11명에게 모두 그런건 아니지만 대개 경외심을 느끼게도 해주는 사람들이 몇몇 있어서, 나 역시 그들이 감명깊게 읽었던 책들은 다 읽어보고 싶었다.
물론 매니아틱한 글의 특성상, 좋아하는 사람은 심히 좋아하겠고, 싫어하는 사람은 극히 싫어할 수 있는 글이다. 아마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엄청난 독서량과 그만큼 축적한 지식수준을 자랑하고 나열한 글.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라면 별로 읽고 싶지도 않을 글이라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그건 어쩔수 없다. 일단 이 책은 작가라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독서가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매혹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글이란 쉽게 쓰여져야 하며, 쉽게 읽혀야 하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갖추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공감시켜줄 수 있는 책에 꽤 끌리는 편이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여기서 말하는 작가들의 세계를 100% 공감할 수 없다하더라도 나중에 시간이 지난후 읽었을 때는 그만큼의 스키마와 함께 더 공감하며,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편이 좋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대부분 그러한데, 알랭 드 보통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에 나는 전부 따라갈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한번 같은 책을 읽었을 때 저자가 말하고자 하던 것이 뭔지, 그가 보여줬던 세계가 뭔지 더 깊이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꽤 좋은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읽기 어렵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지나치게 나열되어 있어도 일단 읽는다. 그리고 그 책에서 소개한 책들을 하나씩 섭렵해 나가곤 한다. 책이 책을 소개할 때, 반드시 이 책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부터 읽기 시작한다. 그렇게 읽다보면 결국 이책과 저책,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는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진중권이 "독창성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자기식으로 배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는 무릎을 절로 치고 싶었을 정도였다. 결국, 세상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고, 자기가 섭렵한 세계의 자기식 재배열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들 각자가 창조한 그 세계에 울고 웃으며 공감하고 깨닫고 매력을 느끼며 빠져든다.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 그리고 정혜윤. 이 12명이 말하는 내용은 아까도 말했지만 책과 함께 구축한 자신들의 세계에 대한 역사이며 짧은 이야기이다. 특히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은희경, 신경숙 의 세계를 흠모했다. 그들이 읽은 책이라면 다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꽤 많은 시간이 들 것 같지만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책에 대한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갔던 길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을 나 역시 조금은 맛볼 수 있겠지. 그리고 그들처럼 자기만의 책에 대한 역사도 하나 만들수 있겠지 하고 살짝 기대도 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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