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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났다기 보다는 사랑을 하는 여자의 책-책과 바람난 여자

gowooni1 2008. 12. 2. 01:30

 

 

 

책과 바람난 여자

저자 아니 프랑수아  역자 이상해  
출판사 솔   발간일 2005.03.19
책소개 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에 대한 소소한 고찰로 이루어진 저자의 자서전. 저자는 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갑자기 밀려오는 공허감에 삶의 목표를 잠시 못보고 우왕좌왕해도, 결국 매번 나를 일으켜주고 다시 삶의 궤도로 올리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다. 수도 없이 책의 도움을 받아 삶을 가다듬고 정신을 한껏 고양시키면서 나는 점점 더 책을 사랑해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음식의 맛도 음미하지 못한채 먹어치우는데 급급한 폭식증 환자처럼 마치 벌목하듯 책을 읽는 독서광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 음, 잘 생각해보니 이건 기우일 수도 있다. 나는 독서광이 될 만큼 책 읽는 속도가 빠르지도 못하거니와, 제발 독서광이 한번이라도 되어보고 싶은 사람이니 말이다. 공대생으로서 부족했던 인문학적 소양을 부단히 쌓기 위해 문사철600이라는 나름의 프로젝트를 세워 추진하고 있건만, 문학 역사 철학에는 잘 손이 가지 않고 그저 마음이 끌리는대로, 손이 가는대로 읽어치우고만 있으니 조금 각성해야겠다. 무엇보다 나는 유년시절 책이라곤 만화책만 죽어라 읽었으니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치울만한 시기가 꼭 필요하기도 한 것 같다. 인풋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도 않은채 걱정만 하는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책과 바람난 여자를 지은 저자 아니 프랑수와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책 속에서 언급하는 책들이나 작가들은 당연히 프랑스인이 많다. 별로 익숙하지 않은 고유명사들에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이런 종류의 글에서는 참 많이 건너뛰어 읽기를 시도하는 편이다. 익숙하지 않은 고유명사와 친해지기는 내가 다른 나라 활자문화의 접근을 시작하는데 처음으로 맞닥들이는 장애인데, 처음에는 일본어가 그랬고, 두번째는 독일어가 그랬다. (영어야 뭐, 워낙에 많으니까 그런 과정은 별로 없었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언어가 러시아어와 프랑스어이다. 그래서 아직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통독하지 못했다. 그리고, 프랑스어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쥘른의 고슴도치의 우아함 같은 소설이나, 베르베르의 작품들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다행인지, 아니 프랑수와도 나와 같은 현상을 겪는 듯해서 조금 안심했다. 그리고 이렇게 책속에서 책을 소개하는 종류의 책을 몇권 읽으면서 하나 결심한 것이 있는데, 나만은 절대 독서편력적인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거다. 이런 종류의 글을 읽는 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일단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재미가 없고, 아는 사람이 봐도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재미있는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텐데, 굳이 그런 글을 쓰는데 나까지 일조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다.

 

저자에게 부러운 점은, 이렇게 독서라는 부분에서 확고하게 자기만의 인생이 녹아있다는 부분이다. 물론 나보다 많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니 그 정도는 당연하다 싶을 수 있겠지만. 나 역시 언젠가는 인생의 한 부분에서 책 한권 분량이 되는 나만의 가치관을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문적인 한 분야의 대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인생을 살면서 내 일상을 차지했던 한 부분에 대해 나만의 방식과 생각관이 정립되었으면 하는 바람들이고, 그것들이 모여서, 그런 단상들이 쌓이고 쌓여서, 조그맣게 한권의 책으로 낼 수 있게 되면 참 좋겠다는 소소한 소망이다.

 

나는 책과 바람난 여자는 아니지만, 책과 사랑에 빠지고 나서부터 어떻게 하면 좀 더 책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한 여자다. 사랑에는 열정이 중요하지만 인내와 들이는 시간도 무척 중요함을 깨닫고 있는 요즘, 시간을 늘리는데,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이어나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 1일 1권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목표를 세우다보니 자연스럽게 하루만에 읽어치우고 포만감을 느낄수 있는 얇은 책에 먼저 손이 가는 현상을 보고 아차 싶었다. 아니 프랑스와는 마음에 드는 두꺼운 책을 일부러 아껴가며 읽는다는 부분을 봤을때 조금 놀랐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일단 두꺼운 책은 배제하고 읽어나가는 편이기 때문이다. 두꺼운 책은 두꺼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작가는 그만큼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엄청난 알맹이를 숨겨놓았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런데 두꺼운 책을 그저 두껍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해왔던 나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조금 아찔하기까지 했다. 만약 두꺼워서, 하루만에 읽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거부해왔다면 그건 확실히 어리석다. 두꺼운 책은 아무리 두꺼워봤자 한계가 있고, 하루에 30분씩이라도 짬을 내서 읽으면 다른 많은 얇은 책들이랑 병행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병행해서 읽기! 이것이 핵심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나오는 독서하기 쉽게 만든 책상이라도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 싶다. 그 책상은 마치 물레처럼 생겨서, 물레를 돌리듯 돌리면 그 부분에 다른 책들이 얹어있는 식으로 생겼다. 그 그림을 보고 나도 이런 책상이 있으면 십수권이라도 병행해서 읽을수 있을텐데 하고 생각했던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뭐 아무튼, 핵심은 병행해서 읽기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나름 독서에 대한 습관이 생겨나가고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이전의 나는 책장을 구기거나 손때를 묻히거나 밑줄을 긋는다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결벽증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점점 많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책을 언제 다시 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중에 한번 더 들춰보기라도 할때 감동받았던 구절만이라도 다시 한 번 더 보자는 심정으로 밑줄을 긋고 있는 정도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나는 책을 절대적으로 깨끗하게 봐야한다고 믿고 있으며 남에게 빌려주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차라리 똑같은 책을 하나 사서 선물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