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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진 인생을 사는 기술 - 슈테판 볼만

gowooni1 2008. 11. 7. 09:27

 

 

 

길어진 인생을 사는 기술 : 슈테판 볼만 : 유영미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30p

 

가능한 한 천수를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긴 안목을 가지고 인생을 설계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수명이 짧았던 옛날에는 정년퇴임 시기까지 일을 하다가 늙으막에 가서 자식들의 뒷바라지, 손주들의 재롱을 보다 인생을 마치면 되었지만 요즘은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진리가 되었으니 옛날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안이하게 살면 안되는 것이다. 현대 의학의 발달은 인간의 수명을 엄청나게 늘려주었지만 우리는 옛날 사람들이 살던 사고방식으로 인생을 살고 있으니 고령화 사회가 문제가 된다. 고대 이집트 노예들은 혹독한 부림을 당하여 평균수명 20세도 되지 않아 죽었고, 중세 유럽은 매우 낙후된 의학 지식으로 인해 20~40세가 되면 보통 병으로 죽었으니, 현대인들의 평균 수명인 85세는 그들의 2~4배가 넘는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85세가 결코 많은 숫자라고 느껴지지 않지만, 생각해보자. 그 옛날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85세는, 우리들에게는 200살 넘어서까지 살 수 있다고 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 있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역시 인간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존재라 현대 의학의 엄청난 발전은 우리에게 신과 같은 수명을 안겨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화를 일으키는 유전자까지 발견했다 하니, 노화를 억제하거나 거꾸로 나이를 먹는 기술까지 만들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어찌되었건 우리는 길어진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면 안될 일이다. 그냥 되는대로 살다 죽는다는 것은 이성이 없는 동물들에게 적용되는 말이고, 이성적이고 목표 지향적이며 항상 나은 모습을 추구하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동원하여 최대한 멋진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슈테판 볼만도 나와 같은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고 그만의 '길어진 인생을 사는 기술'에 대한 철학을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오래 산다는 것은 특권이다. 공병호의 10년 법칙을 적용해 보더라도, 옛날 사람들이 한 가지에서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적어도 2~3가지 분야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굉장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오래 사는 사람들은 언제든 '이게 아닌데' 싶으면 당장에라도 진로를 바꿀 자유가 있다. 재빨리 길을 바꾸더라도 그것에서 성공할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인간의 수명연장 아래 가능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보고, 현대인들은 우직함이 없고 한 우물만 파지 못하며 인내심도 없다고 비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것이, 옛날과 현대는 확실히 사는 방식의 측면에서 같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간혹 이런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옛날 사람들이라 해서 꼭 일찍 죽었던 것도 아니고, 괴테나 도스트예프스키, 베르디, 프랭클린은 오래 살아서 그런 업적들을 많이 남길 수 있었으니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말도 안된다고. 그래도 상관은 없어보인다. 그들은 그 시대 사람들에 비해 굉장히 오래 살았고, 그런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런 업적을 남겼으니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은 21세기적 삶을 산 과거 사람들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또, 우리는 반드시 어떤 것에서 정상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만은 아니고, 오래 행복하기 위해서 길게 살고 싶을 뿐이다. 내가 너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래서 꼭 정상에 이르지는 않아도 그걸 하는 자체만으로 행복해서 죽겠는데, 너무 아프거나 일찍 죽을 병에 걸려 다 못하고 죽는 것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어느 한 분야에서 정상을 이룬 사람들은 정상을 위해 노력했다기 보다는 그 과정에서 행복함과 삶의 의미를 느꼈기 때문에 그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그런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슈테판 볼만은 이런 생각들을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으로'란 책에 적용되는 고슴도치 이론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다. 고슴도치는 한 가지만 우직하게 보고 단순하게 사는 동물로 묘사되고, 그와 반대되는 개념은 여우인데, 여우는 언제나 여러가지 대안을 만들어 놓고 결코 '몰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여우같은 기업은 쉽게 망하지도 않지만 획기적인 영업이익을 내는 것도 아니며 그저 꾸준히 유지된다. 그러나 고슴도치 기업은 위험성이 높긴 하지만 한 번 도약을 하면 하늘을 날며 일약 스타가 된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이 되려면 여우같아지기 보다는 고슴도치 같아지기를 조금 더 추천한다. 그러나 슈테판 볼만은 우리 인생에서는 고슴도치가 되어서는 안되며 길어진 인생에서 안전하게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여우같은 사람이 되라고 충고한다. 많은 취미를 만들어 놓고, 여러가지 공을 저글링하듯 즐기며 사는 인생이 현대인들에게 더욱 어울리며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나 역시 여기에 공감한다. 그러나 또 의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에 10년 정도 고슴도치처럼 한 우물 파며 살다가, 또 새로운 10년이 주어지면 다른 것을 다시 시작하여 또 그 부분에서 고슴도치 처럼 사는 건 어떨까 하고. 그런데 내가 뭐 많이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약간 비현실적인 감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이 어떤 한 분야에 10년을 몰입했으면 다른 분야에서 그만큼의 열정을 다시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잘 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열정이 수그러든 분야에서는 예전만큼 열정이 되살아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니 어쩌면 여우처럼 여러가지를 즐기며 꾸준히 사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그렇게 여러가지에서 20~30년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즐기다 보면 조금 시간은 늦어지긴 하겠지만 나중에는 확실히 여러가지에서 뭔가를 이룰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뭐, 꼭 뭐가 되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뭐가 되어야 겠다는 것은 사람을 피곤으로 모는 스트레스의 주범일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