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 : 알랭 드 보통 : 공경희 역 : 은행나무 : 407p
출판사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부수의 책을 팔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책의 카피를 쓰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이 쓰는 책의 내용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당신이 꿈꾸는 가장 낭만적인 로맨스]라니, 말도 안된다. 이 책의 내용은 '우리는 사랑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내용이며 지극히 이기적이고, 벌거벗은 감정에 한없이 자신을 감추는, 감정에서는 애나 다를바 없는 32살의 남자 에릭과, 그런 에릭 앞에서만큼은 자신의 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채 못나고 줏대없는 여자로 전락하는24살의 엘리스가 감정적인 줄다리기를 하면서 1년 이상을 사귀는 동안 겪는 연애, 심리감정을 상세히 묘사한 소설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내내 바보 같은 엘리스 때문에 답답하고 짜증났으며, 동시에 다시 한번 알랭 드 보통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는 사랑일까'라고 번역된 이 책의 원제는 The Romantic Movement, 즉, 낭만적인 움직임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사실 이미 1997년도에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출판된 바 있으며, 그 책은 절판된지 오래됐다.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이름으로 재번역되어 나온 이 책은 2005년에 출간되었으며 많은 영문책을 번역한 바 있는 공경희가 맡아서 왠지 신뢰가 더 가고 문장도 매끄럽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멋지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전혀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는 사상들을 하나의 연관성을 포착해 연결지어 생각하고 거기서 공통된 심리나 구조를 파헤치는 보통 특유의 능력이 책 전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한 페이지씩 넘길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그런 감동의 여운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감미하고 읽었다. 책을 읽다가 발췌하고 싶거나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은 전 페이지에 걸쳐서 밑줄을 긋고 박수를 치며 공감을 하고 싶었다.
The Romantic Movement는 한 번 읽어서는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을 온전히 내 것으로 파악하긴 힘들다. 항상 가지고 다니며 읽고 싶은 책이 나타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닌데, 근래에 갑자기 두권이나 생겨버렸다. 소로우의 월든과, 보통의 이 책이다. 나는 아마 당분간 이 책에 심취하여 몇번을 다시 읽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소설들이 스토리의 흥미진진한 전개와 절정 부분에 가서 기묘하게 들어맞는 여러 정황들에 재미를 준다면,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그런 것을 바라면 안된다. 그의 책의 매력은 기발한 소재의 포착이나,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전개가 아니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느끼기는 하나 무의식적인 부분에서 머물고 마는 느낌들을 자신의 지식을 총 동원하여 매우 기발하게 비유하고 묘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무릎이 탁 쳐지게 만드는 데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나이가 들면서 사랑에 대한 관심도가 시들해 졌기 때문에 요새는 여행, 건축, 불안 이라는 다소 포괄적인 개념들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는 하지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나 '우리는 사랑일까'는 보통이 20대, 즉 한창 사랑이라는 가치를 다른 가치들보다 더 많이 생각했을때 쓰여진 책이라서 더욱 실감나고 공감가며 어떻게 이런식으로 바라보고 비유하며 생각했을까 하고 감탄하도록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도 무척 재미있게 봐서 꼭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책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정말 탐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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