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이너 마리아 릴케

gowooni1 2008. 11. 2. 23:46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R.릴케 : 홍경호 역 : 범우사 : 204p

 

릴케의 유일한 장편소설 '말테의 수기'는 그 자신이 말한 만큼 위대한 내적 고백의 소설이긴 하지만, 내게는 솔직히 별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였다. '말테의 수기'를 쓴 이후로 릴케는 그 이상 뭔가를 쓴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을 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유일무이한 소설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릴케가 너무 위대한 시인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나와 릴케의 시대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소설을 완벽하게 감동하여 이해할 수 없음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보다 나는 릴케라는 사람 개인에게 더 관심이 있다. 그는 니체를 광기로 몰고 간 여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의 13살이나 어린 애인이었으며, 일찍이 목표있는 삶을 포기하고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도피하여 사물과 일치하여 사색하는 삶을 살았다. 말테의 수기에도 나오지만, 그는 '보는 것을 연습하는 사람'이었으며,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사색하며 자신이 그런것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때 릴케가 세상에 대해 취했던 이 자세에 매혹되어, 나 역시 모든 것을 '보는' 연습을 하며 나와 그 사물을 일치시키고, 나만의 언어로 정의를 내려보는 작업을 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항상 보는 것이라도 꼼꼼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굳이 릴케처럼 시인이 되지 않아도 개인의 삶을 풍부하게 함은 물론 창조성을 높이는 데에도 무척 도움이 된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한 이름 없는 젊은이가, 이미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어느 정도 얻고 있었던 시기의 릴케와 서신을 교환하면서 릴케 본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모아 출간한 책이다. 젊은 시인에게 보낸 편지는 물론, 다른 사람과도 교환한 편지들이 함께 묶여져 나왔다. 그 중에는 잘 모르는 사람도 있고, 이미 유명한 그의 애인이었던 루에게, 그리고 자신의 아내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들도 함께 있다. 릴케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만 골랐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릴케의 정신 세계나, 그가 시에 접근하는 방법, 또는 그의 삶을 연구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매우 유용한 책이다.

 

만약, 릴케한테 '시란 어떻게 쓰며 접근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온전히 자신에게로 침잠하여 조용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발전을 통해 성장하라, 자신의 시를 남들의 눈에 의한 비평이나 충고를 얻어 외부의 눈으로 바라보려 하지 마라, 사랑의 시는 쓰지 마라, 창조력이 빈약할 때는 아이러니에 정신을 잃지마라, 미학적이고 비평적인 글은 읽지 마라, 등등의 충고가 책 여기저기에 잘 녹아있다. 한가지 모순은,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얻으려 하지 말라고 하면서 결국 릴케 자신도 충고를 하고 있다는 점. 뭐, 이 정도는 위대한 시인이니 너그러이 넘어가 주련다.(너그러이 안 넘어가면 어쩔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