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헨리 데이빗 소로우 : 강승영 역 : 이레 : 485p
월든을 내가 안 것은 대학교 2~3학년 정도때였으니 벌써 5~6년은 되었다. 그리고 그 기간은 월든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라는 저자를 알고도 읽지 못했던 시간임을 의미한다. 월든을 읽었거나 읽으려고 시도를 해본 사람은 다 알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쉽지 않다. 만만하지 않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내리기에는 분량이 적지도 않고 삶에 대한 경험이나 사회생활의 경험이 없는 젊은이에게는 공감대가 형성될만한 부분이 없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지 않는 도시인이라면 더더욱 머릿속으로 쉽게 그려지지 않는 숲과 호수, 자연 등 그가 2년 2개월 동안 살았던 공간에 대한 묘사들이 가득하다. 기존 사회에 대한 통찰과 통렬한(?) 비판도 단단히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저자가 그 숲에 들어가 살기 시작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반 사회적인 심리이기도 하다. 반사회적이라고 하니 좀 극단적인 표현으로 들리겠지만, 그의 반사회성이라 함은 온건하다. 그는 현대인들이 쓸데없이 필요이상의 노동을 하며 자기자신에게 삶을 쏟지 못하는 이유는 허황된 욕심-예를 들자면 크고 화려한 집-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자신이 집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집이 자신을 지배하는 사회구조가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싫어한다. 자신이 속한 현실을 싫어해서 자신은 그 대류에 합류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삶의 리듬에 따라 사는 그이지만, 지나치게 대놓고 그것들을 비판하며 대중을 선동하지는 않고 다만 그의 글을 통해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월든]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모교의 이름을 등에 업고 세상에 나와 화려한 세속적 성공을 거두며 사는 인생에 대한 회의를 품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보다 자신의 내면적인 소리에 귀기울여 사는 삶을 택하고, 28세에 그의 고향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로 와서 직접 통나무 집을 짓고 2년 2개월동안 지내던 기간에 겪은 경험, 관찰, 성찰, 철학을 쓴 에세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 산문집이 굉장히 낭만적이고 자연에 대한 애찬을 가득 적어놓은, 조금은 시적인 책일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첫 챕터를 읽는 순간 곧장, 독자 각자의 생각이 잘못되었으며, 숲생활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부터 나열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직접 숲에서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면서 알게된 사실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그건 다음과 같다. 자신이 월든 호숫가에 직접 통나무 집을 짓는데 들은 돈은 고작 28달러 안팎이지만, 그가 하버드 대학에 재학중일때 필요했던 1년 기숙사 비는30달러였으므로, 혼자만의 시간이나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으면서도 쓸데없이 많이 소요되었던 비용이 얼마나 크고 또 부질없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 자신이 먹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1년중에 6주일 정도만 일하면-그것도 지적인 일이 아니라 순수 육체적인 노동- 충분히 벌 수 있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으므로, 현명하고 소박한 생활을 유지하는 지혜만 있다면 생계유지를 위한 비용을 버는 일은 즐거운 일이 될수밖에 없다는 것, 이 사실 역시 첫 챕터인 '숲생활의 경제학'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다.
그는 실제로 숲속에서의 생활에서 하버드에 다닐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했으며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자신에 집중하며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길 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체노동을 할만큼은 깨어있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이 효과적인 지적노동을 할 수 있을 만큼 깨어 있으며, 또 그 중 지극히 일부만이 시적이거나 신적인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깨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깨어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렇게 순수하게 깨어있으며 자신의 삶을,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숭고하고 소중한 시간에 음미해보고,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말하는 의도적인 삶이 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건 최소한 단순하게 사는것을 말하고 있다는 거다. 백가지의 일을 한가지로 줄이고, 다섯끼 먹을 것을 한끼로 줄이며 보다 간소하게 살고 보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사는것. 다른 모든 일도 이런 비율로 줄여서 간소하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 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리 말하지만, 그가 월든 호숫가에서 산 기간은 2년 2개월이어도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기계적 시간은 그가 첫 숲생활을 한 1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책의 마지막 즈음에서 자신의 1년에 관한 통찰과 묘사를 마무리하며 그 다음 해도 첫 해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지나갔다 한다. 그리고 책 전체에는 그가 계절의 변화에 따른 숲속생활의 변화와 자연의 변화를 매우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월든 호숫가의 통나무집에서 보내는 여름, 가을, 겨울, 봄이 자세히 그려지며 하나의 인간극장을 보는 기분이 든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숲속 환경의 변화, 자신이 숲생활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겪는 생활상, 호수나 숲에 대한 묘사, 생계 유지를 위한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경제적인 상태 등등. 그러는 중간 중간에 곁들이는 자신의 사상도 글 전체에 어우러져 하나의 디저트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중간에 튀어나오는 그만의 단상들이 너무나 훌륭하고 내 삶의 아포리즘으로 만들고 싶어져, 생전 책이 밑줄을 긋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살펴보자면,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한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하버드 대학의 혼잡한 교실에서도 정말 공부에 몰두해 있는 학생은 사막의 수도승만큼이나 홀로인 것이다.'
'길을 잃고 나서야, 다시 말하면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
'진정한 부를 즐길 수 있는 가난, 나는 그것을 원한다.'
특히 마지막 18챕터의 맺음말에는 그의 사상에 핵심이 엑기스처럼 함축되어 있어서, 나는 18장을 통째로 외우고 싶을 정도였다.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각자는 하나의 왕국의 주인이며, 그에 비하면 러시아 황제의 대제국읜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 얼음에 의해 남겨진 풀 더미에 불과하다.
'...단지 자신을 탐험하라. 여기에는 맑은 눈과 굳건한 용기가 필요하다. 패배한 자, 자신의 의무를 버리는 자들만이 전쟁터에 간다. 그들은 도망쳐서 군대에 몸을 맡기는 겁쟁이들이다.'
'내게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개의 인생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꼈으며, 그리하여 숲 생활에는 더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경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그는 과거를 뒤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을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변과 내부에 확립되기 시작할 것이다...그가 자신의 생활을 소박한 것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이다. 이제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빈곤도 빈곤이 아니며 연약함도 연약함이 아닐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공중에 누각을 쌓았더라도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누각은 원래 공중에 있어야 하니까. 이제 그 밑에 토대만 쌓으면 된다.'
'미래를 생각할 때, 또 앞으로 가능한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앞쪽 방면으로는 어느 정도 느슨하게, 선을 그어놓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타고난 천성에 따라 고유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게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록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우리는 헛된 현실이라는 암초에 우리의 배를 난파시켜서는 안 되겠다. '
'자신을 개발하기 위하여 서두른 나머지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그것도 일종의 무절제이다.'
'나는 내 자신의 본연의 자세에 돌아와서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남의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화려하게 과시하며 돌아다니기 보다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우주를 창조한분과 함께 거닐어 보고 싶다.'
'나는 저울대에 매달려 자신의 무게를 달면서 균형을 잡다가 나를 가장 강하게 그리고 가장 정당하게 끌어당기는 것에게 인력에 의해 끌려가고 싶다. 저울대에 매달려 몸무게가 적게 나가려고 발버둥치고 싶지 않다. 어떤 사정을 지레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정만을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그 위에서는 그 어떤 권력도 나를 막을 수 없는 길을 가고 싶다. 단단한 토대를 쌓기도 전에 아치를 세우는 따위의 짓은 나에게는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한다. '
'사랑보다도,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나는 진실을 원한다.
나는 월든을 읽으면서, 진정으로 저자가 부러웠다. 아무 망설임도 없이(과연 그랬을지는 모른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해본적이 없으니까) 자신이 생각하던 대로 삶을 살고 자신의 소신대로 인생을 만들어간 그가 너무나 멋져보였다. 그가 월든 호숫가에 혼자 살기 시작하던 나이가 28세라면, 나도 점점 그 나이에 다가감을 느끼면서 나 역시 그 나이에 혼자 2년 2개월이라는 삶을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정말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나는 안되는 이유를 하나 알았다. 그건, 나와 소로우의 결정적인 가치관의 차이를 반영한다. 소로우가 사랑, 돈, 명예보다도 진실을 원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돈, 명예, 진실보다도 사랑을 최고로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게는 어쩌면 사랑이야말로 내게는 진실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P.S 현재 21세기의 미국은 세계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 군사, 문화적 측면에서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음을 최근 깨달았다. 그건, 미국은 자연이 별로 아름답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었는데, 타샤 튜더의 책과, 이 소로우의 책을 읽으면서 미국도 아름다운 대자연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느꼈다. 한번쯤 가보고 싶은 장소의 목록에 하나 추가.
나의 가보고 싶은 장소
1. 루시 몽고메리가 살던 빨간머리 앤의 배경인, 캐나다의 에드워드 섬.
2.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고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그리스의 지중해 섬들.
3. 한때 살고 싶었던, 집 앞으로는 호수가 펼쳐져 있고 뒤로는 초원이 펼쳐진 집이 많을 것 같은 스위스.
4.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순수한 자연으로서의 호수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은 미국 콩코드의 월든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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