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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드는 것의 미덕-지미 카터

gowooni1 2008. 10. 18. 10:59

 

 

나이드는 것의 미덕 : 지미 카터 : 김은령 역 : 끌리오 : 168p 

 

나는 지미 카터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게 별로 없었다. 그저 재선에 실패하였으나 퇴임 후에 더 많은 활동을 보여 많은 책을 출간하고 2002년엔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성공한 퇴임 대통령'이라는 사실 정도? 무엇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크게 궁금하지는 않다. 그러나 퇴임 후 카터 재단을 설립하고, 사랑의 집짓기 같은 자원봉사를 하며 이리 저리 뛰어다녔으니 그런 종류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을 거다.

 

사람들은 지미 카터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슷하다고 비교한다. 소위 상류계층 피를 물려받지 않고, 인권에 남다른 열정과 의지를 보였으며,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평가를 듣고 대통령좌에서 물러나와야 했던 대통령이라고 비교하면 얼핏 비슷해보인다. 그러나 지미 카터는 십수권의 책을 꾸준히 펴내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통령이었을 때보다 훨씬 성공적인 사람이 되었으니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정도의 전철을 밟아 앞으로 남은 2~30년의 인생을 마무리한다면 나는 그를 어느 누구보다 존경할 수 있다.

 

지미 카터라는 사람이 대통령으로서는 전 국민에게 '넌 실패자야'라는 소리를 듣고 물러나야 했지만, 남은 자신의 인생에 굴하지 않고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그가 튼튼하게 구축한 자신만의 나이 듦에 대한 철학이 있었으리라. 나이든다는 것에 대한 철학. 그것의 부재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수록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20대 실업률이 사상 최하고 일하지 않는 청년이 늘어난다고 매스컴에서 연일 보도되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 아닌가? 우리나라 역시 고령화 사회로 들어가는 중이고 전 인구수에 비해 20대는 줄어들고 있으며 60이상의 노인들이 더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하는 사회로 탈바꿈 중이다. 여전히 전 인구수에 비해 20대의 비율이 비슷하거나 많아진다면 그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올 수 있으나, 지금 우리는 청년층의 실업률을 운운할 게 아니라 노년층의 실업률과 교육의 부재를 더 심도 있게 다뤄야 할 것이다. 지미 카터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은퇴를 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은퇴하기 전에 했던 일을 반드시 거들먹거리며 자신을 그 일과 동일시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렇게까지 냉소적인 말투로 말하지는 않지만 뜻은 같다. '나는 은퇴자야' 라는 생각이 자신의 수명을 더 단축시키고, 노년의 생기를 더 빼앗아갈 뿐이다.

 

나도 은퇴자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직업이 아닌 직장과 동일시 하면 그것만큼 안되보이는 것도 없다는 것을 더 잘 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의 부재가, '나는 OO를 하는 사람, 나는 OO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OO에서 일을 했던 사람, 나는 OO직을 맡았던 사람'으로 만든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면 늙는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은 좀 다를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에서 보통 대학시절과 은퇴 이후만큼 자유로운때도 없다. 왜 그 자유를 소속감의 박탈이라고 생각하는 걸까.(대학생일 때는 소속감도 있고 자유도 있기는 하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시기에 일하고, 성공가도를 달려 출세하고,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분명 명예욕이나 권력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그게 욕심이 아니라 진정한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을테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기업의 성과를 극대화 시키고, 나라를 위한 법을 제정한다. 그런 사람들이 없다면 어쩌면 이 사회는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환경미화원이 반드시 필요한, 너무나 고마운 존재이듯이 그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도 40세 50세 60세 70세 등등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세워, 막상 그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 후회가 꿈을 대신하지 않게 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뭐?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그럼 나 혼자 괜히 오버해서 착각한거 맞다.)

 

그렇게 생각하면, 각자의 나이대에는 해야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 자명한 진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지금의 나이대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이들어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는게 맞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하루도 하지 않으면 삶을 산 것 같지 않다는 기분이 드는 일을 하는게 맞다는 것은 잘 알겠는데, 20대의 하루는 너무나 짧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기에는 24시간이 너무나 짧다! 내게만이라도 하루가 48시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20대라서, 아직 무한한 가능성과 시간이 많아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