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 : 짜증나면서도 재미는 있던.

gowooni1 2008. 9. 28. 12:49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 문학과지성사 : 442p 

 

오은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오은수이며, 32살 미혼 대한민국 여성이다. 그리고, 도시에 살고 있는 32살 즈음의 미혼 여성이라면 많이 공감할만한 내용 일수도 있다. 나는 일단 그 나이도 아니고, 직장도 다니지 않으므로 7년차, 8년차 커리어 우먼의 비애, 그러니까 딱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니까 이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지만 더러워서 못해먹겠는 직장일이나 잘 풀리지 않는 연애 등을 뼈저리게 와 닿으면서 공감하지는 않았다. 그냥 이런 세상의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정도. 백영옥의 스타일과 비스꾸레한 분위기의 전형적이 칙릿소설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칙릿은 그다지 즐겁지 않고 우울한 현실을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서 이 시대 여성에게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감과 약간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그러나 충분히 일어날 만한 가능성이 있는) 일들로 장치를 마련하여 위기감도 탄탄히 조성하여야 하는 법칙이라도 있나보다.

 

소설의 첫부분과 중간부분까지는 어쩔수 없이 현실에 순응하고야 마는 비굴한 모습으로 내 몰입도를 높이지 못했으나, 뒷부분으로 가면 갈수록 자기 자신에게 더 충실하고마는 주인공을 보며 유쾌, 상쾌, 통쾌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뭔가가 풀린다는 기분은 들었다. 첫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조리한 여러 현실을 받아들이며 사는게 사람의 삶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주입이라도 하겠다는 심산인지, 꿈을 마음껏 비웃고 현실에 순응하는 주인공처럼 사는게 정상적인 삶이라고 세뇌라도 시키겠다는 건지 싶어 나의 짜증을 한없이 돋구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싫어도 별 수 있어? 다 그냥 하는거야. -세상이 만만한 줄 알아? 그게 현실이야. 따위의 꿈을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이나 생각등인데, 그게 소설의 주요 정신인 듯 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녀의 주위에도 꿈을 향해 맨땅에 헤딩하며 돌진하는 무리들이 있다. 유희라든지, 태오라든지. 왜 주인공 오은수는 태오의 삶을 그렇게 철부지 어린애가 세상물정 모르고 지내는 거라고 무시했을까.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절대 저렇게 자기가 만들어 놓은 어쩔수 없는 현실에 무릎을 꿇고 꿈을 비웃는 32살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 저런 무기력한 32살은 되지 말자고. 저런 심리를 조금도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다짐도 했다.

 

은수, 유희, 재인의 이 삐딱한 친구관계를 보면서도 많은 걸 결심했다. '니가 아무리 잘난 척 해봤자 나는 이 밑바닥을 알고 있다'는 심리로, 친구가 자신보다 뭔가 잘나가는 듯하면 삐딱한 시선으로 질투부터나 해 대는 이 가증스런 무리들이 과연 친구인가. 더 오래 사귄 친구들이 없으니까, 그저 편해서, 못마땅한 구석이 있어도 그냥 만나는게 친구인가. 잘 된 것을 진심으로 잘 되었다고 기뻐해 주지 못하고, 친구의 불행이 닥치면 위로해주며 그나마 내 처지는 낫지 하는 일종의 자기 위로나 해대는 것은 절대 친구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는 불행은 되도록 조심스레 위로해주나,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잘 된일은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게 친구라고 생각한다. 내 잘 된 일을 질투나 하며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하는 사람은 기본이 부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친구로 사귀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런 사람은 잘 된일을 한없이 깎아내리며 상대적인 자기 처지나 위로하기에 급급할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번, 친구라 생각한 사람이 잘 된 일을 듣고 내 일 처럼 기뻐서 아니, 내 일보다 더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는데, 실제로 그 친구는 내 일을 단 한번도 진심으로 축하해 준적이 없으며, 질투만 해댔고 항상 부정적인 말만 해줬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느낀 배신감이 너무 커서 그런가, 절대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 친구관계는 내 인생에서 배제해야겠다고 절절히 느끼며 다짐했고, 그래서 이 주인공의 친구같은 사이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내게 '이런건 절대 싫어'라면서 확고하게 싫은 것들이 있고, 중용의 미덕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하여 나를 어린애라 생각한다 해도 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 기본적인 내 생각이 바뀔 때까지 그냥 어린애로 전락해도 좋다.

 

다행인지, 작가의 의도인지, 오은수는 처음의 한심한 32살에서 조금은 발전된 모습을 하며 소설이 끝난다. 그래서 나는 짜증을 조금씩 누그러뜨려가며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짜증나서 던져버리기에는 정이현이라는 작가는 재미있게 스토리를 풀어내는 능력이 출중하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 책을 이미 구입해 버린 시점이기 때문에 그냥 던져버리기에는 좀 아까웠다. 나는 정이현이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음에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기본 정신을 깔고 있는 소설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