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즐거운 나의 집 - 공지영

gowooni1 2008. 9. 25. 10:53

 

 

 즐거운 나의 집 : 공지영 : 푸른 숲 : 344p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한 것 같다. 소설이란 것이 시간 아깝고, 쓸모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그렇게 거들떠 보지도 않던 내가 막상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내 돈주고 서점가서 몇권을 사도 비용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이렇게 훌륭한 소설을 구입하는 데 왜 돈이 아까워? 저비용으로 최고의 효율을 달성할 수 있는 교과서 아닌가, 하면서 어제 나는 두권의 책을 구입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즐거운 나의 집]이다.

 

굳이 페미니스트가 되려는 건 아닌데, 여성 작가들의 소설에 본의 아니게 끌리고 그들의 소설을 자주 읽다보면 역시 조금은 영향을 받는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렇고, 공지영이 그렇다. 아니 겨우 두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서 영향을 받았다고 섣불리 말할수 있나? 그래, 적긴 적지만 분명 영향은 받는다. 외국작가들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한국소설에 투자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그래도 가장 많이 읽은 작가가 공지영일 듯 싶다. 몇 년 전, 느낌표에서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에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를 소개한 것을 읽은 뒤로 그녀를 알았고 그녀의 작품을 조금씩 알았다.

 

[1.즐거운 나의집]과, [2.네가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한 것이다], [3. 괜찮다, 다 괜찮다]는 그녀가 말하는 위로 3부작 시리즈라고 한다. 1번과 2번은 이제 막 20대 초입에 들어선 딸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건 내 나이대를 겨냥한 책이 아니군'하고 외면하다가, 최근 2번을 읽고나서야 그게 아닌줄 알고 1번을 구입했다. 다 읽고 나서의 소감. 나는 정말 잘 샀고, 그녀는 정말 잘 썼다. 소설이라 그런지 2번보다 더 친숙하고 그녀가 삶을 살면서 느꼈던 깨달음과 생각들이 이야기 상황에 절묘하게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보다 십 수년을 더 살아보고, 치열하게 살았으며, 삶을 온 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여성이 얻은 깨달음과 생의 애찬, 삶을 맞이하는 지혜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기본적으로 그녀와 성이 다른 세 아이들과의 실제 생활이 소설의 주재료이기 때문에 너무나 기쁨도 내 친구가 좋은 일당한 것처럼 기쁘고, 슬픔도 절절해서 눈물도 조금 난다. 공지영이 본 공지영이 아니라 19살의 딸 위녕의 입장에서 본 공지영을 자기가 저렇게 실감나도록 그리다니. 저자는 후기에 이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니 너무 실제상황이라고 착각하면서 읽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는 하지만 어쩌랴, 독자에게는 100% 그녀의 삶이라고 여겨지는 걸. 그래서 더욱 실감나고 그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는 걸 말이다.

 

사실 그녀가 이혼을 세번을 하건 하지 않았건 나는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요즘 세상에 이혼 세번이 별 대수인가? 그런데 그녀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특히 자신이 공인이 되면서 사회적으로 받아야할 비난의 눈초리들이 고작 40이 넘은 그녀에게는 만만한 장애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게 뭐 어때 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내 주위의 가까운 사람중 이혼한 사람이 몇 있기 때문에 그녀의 입장이 더 아무렇지 않게 느껴짐을 부정할 수는 없다. 20대 초엽에 나도 이혼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던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대중들은 이혼녀라는 소리를 들으면 색안경을 끼고 다시 보는게 현실이니까. 그런데 이혼이란 것도 다 삶의 과정이고 선택이며 보다 나은 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면 그게 맞다. 싫은데 억지로 참고 사는 삶? 죽지 못해서 겨우 사는 삶? 이게 사람 사는 건가. 동물과 하등 다를바 없다. 난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혼도 못하고 억지로 함께 산다는 부부들에게 절대 그렇게 살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너희들 때문에 지금 죽지 못해 산다. 너네들 시집, 장가 보내고 나면 그때 이혼할거야'라고 말하는 부모한테는 절대 그런 말을 두번 다시 하지 말라고 할 뿐 더러 당장에 헤어지라고 할 것이다. 그런식으로 내 삶이 무엇때문에 보류되고 있다는 소리 들으면 행복할 사람 아무도 없다. 너도 불행해지고 나도 불행해진다. 자식들도 그런 걸 바라지는 않는다. 나 때문에 부모가 삶을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부모란 존재가 귀찮고 부담스러우며 괜히 책임감 느껴지고 그래서 짜증나는 존재 그 이상은 되지 않는다. 참는것이 미덕? 우리가 언제 그렇게 참으면서 살아왔나. 참지 않는게 미덕인 사회에서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 위로시리즈 1번을 보면서 나는 참 즐거웠다. 가벼운 이야기 속에 삶의 깨달음을 녹아들게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공지영은 언제나 훌쩍 이런 이야기를 써서 내는 줄 알았는데, 천번은 고쳐서 쓴다고 소설속의 공지영이 말하고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아 그렇구나. 이런 소설이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아니고, 천번의 퇴고를 고쳐야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는구나. 흐음. 아무튼 이 책은 정말 잘 샀다. 나는 아무래도 에쿠니 가오리 이후로 다시금 빠질만한 작가를 찾은 것 같다. 왜 이렇게 가까운 한국작가를 놔 두고 멀리 일본작가에게 먼저 빠졌지? ㅎㅎ 굳이 한국 일본 따지자는 건 아니고, 그냥 공지영의 세계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 공지영을 탐독하면 은희경, 정이현을 차례로 탐독해 보려는게 현재 내 계획이다.

 

 P.S  공지영의 소설 겉표지는 정말 센스가 없다. 적어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고등어, 봉순이 언니, 즐거운 나의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은 그렇다.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하는게 좀 더 정확하려나. 너무 촌스럽다. 겉표지 좀 멋지게 신경을 쓰면 더 좋을텐데. 냅두라고? 하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소관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