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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계덩어리는 정말 쓸모 없는 걸까?-모파상 단편선:기 드 모파상

gowooni1 2008. 9. 18. 23:28

 

 

 

모파상 단편선 : 기 드 모파상 : 이정림 역 : 범우사 : 286p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엄연히 존재한다. 두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한 사람은 변호사이고 또 한 사람은 청소부다. 우리는 두 사람을 똑같은 존경의 눈빛으로 대할 것인가? 우리의 양심은 똑같은 존경을 가질 수 있다고 외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변호사를 더 존경하게 된다. 그 사람이 돈을 잘 버는 변호사건 아니건 간에 말이다.

 

만약 이 세상에 모든 환경미화원 및 청소부들이 파업을 선언했다면 우리 지구는 어떻게 될까? 쓰레기 매립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 뛰는 일용직 잡부도, 파출부도, 간병인도, 정화조 치우는 사람도, 전부 파업을 선언한다면? 아마 우리는 정상적인 생활을 며칠 못하고 말 거다. 며칠이 아닌 단 하루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그들의 노고에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기꺼이 해드려야 한다. 물론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해봤자 콧방귀나 칠테지만 말이다.

 

모파상의 대표 단편 '비계덩어리'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한 번 더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언제나 모든 사회에는 이런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도 될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동과 생각과 말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라고도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불 드 쉬프'는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비계덩어리 정도로 해석된다. 이 제목 부터가 풍자적이다. 불 드 쉬프는 애석하게도 직업이 창녀다. 자신의 이름-엘리자베스 던가-을 가지고 있어도, 작가에게 조차 불 드 쉬프라고 지명되며 천대를 받는데, 그녀의 직업 때문에 등장인물 들에게도 천대와 멸시를 받는다. 천덕꾸러기 불 드 쉬프는, 인간이 존재적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가장 필요한 존재이지만, 그런 기본적 욕구들이 채워졌을 때에는 가장 멸시 받는다. 먹을 것이 없는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음식을 나눠주고, 일행의 이동 허가를 위해 적과 동침을 하는 불 드 쉬프. 일행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존경과 애정이 아니라 언제나와 같은 천대와 멸시였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녀의 눈물은 읽는 모든이에게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여운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모파상은 이를 통해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모파상의 대부분 작품들이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통렬하게 풍자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본다면, 사건 설정과 묘사가 참으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고 할 수 있겠다. 어릴 적, 그의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을 읽었을 때에는 그의 우울한 작품 분위기가 영 싫고 공감가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어 읽는 그의 작품들이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 실감이 가는 것은 나도 어느 정도 세상의 부조리한 면을 겪어봤다는 뜻이리라. 괜히 착찹한 마음이 생긴다.

 

순자의 성악설과 같은 맥락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 쉽게 짐작되는 모파상은, 너무 인간의 악한 면에만 집착한 삶을 살은 듯하다. 많은 작품을 썼지만 밝은 분위기의 작품은 별로 없고, 항상 날카로운 시선으로 풍자 할 만한 소재만 찾았던 그의 삶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일찍 그 명성을 떨쳤지만, 탈모와 실명, 42세의 나이로 요절한 그의 삶을 뒤돌아보자면 조금은,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세상을 봤다면 그런 불운을 좀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