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괴물-이외수

gowooni1 2008. 9. 15. 20:11

 

 

괴물 : 이외수 : 해냄출판사

 

우리나라 소설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는 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 소설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 소설을 별로 안 읽는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우리나라 초중고 국어 커리큘럼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기는 하다. 현대에서 구사하는 한글을 사용한 책이 본격적으로 발간된게 아직 100년이 채 되지 않는데, 그나마도 60~70년대 소설은 요즘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말투로 잔뜩 나열되어 있어 거부감이 들고, 더 옛날로 올라갈수록 이런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즉, 우리나라 소설을 읽어도 오히려 번역된 외국 소설보다 더 우리것 같지않고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거다. 나는 심각하게, 우리 고전들, 60~70년대 소설들 전부 현대어로 재 번역해서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몇 백년을 넘게 같은 언어로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해온 민족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고서적에 대한 괴리감을 조금은 덜 느끼겠지. 부럽다. 우리나라 소설은 100년 전 것이라면 어김없이 고어와 한자가 한데 어우러져 전문 학자가 아니면 해석할 수 없는 지경이니 말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문사철 600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첫 한국소설을 뭘 읽을까 하고 고심했다. 나름 작품성이 있는 태백산맥이나 토지같은 대하소설에도 욕심이 생겼지만 워워워. 아직 무리다. 분명 처음부분 읽다가 나가 떨어질거 같다. 나는 우울했던 근대 한국사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좀 더 깊게 파고들 마음이 없다고나 할까. 세종이나 정조 같은 밝은 시기의 역사를 읽으면 신이 나는데 연산군이나 선조같은 한숨나오는 왕들의 치세기간을 읽고 있노라면 우울해진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한국은 19세기부터 1980~90년까지는 내내 우울했고 치열했던 기간이다. 그래서 잠시 근현대 대하소설은 패스. 좀 재미있는 것을 읽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난 사람이 이외수다.

 

이외수란 사람을 난 잘 알지 못했는데, 그가 공중부양에서 말하는 것처럼, 소위'뜨고'나서부터 그를 알기 시작했다. 어떤 꼬마아이가 엄마한테 '엄마, 이 할아버지 요즘 떴어!'라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아서 공중부양이라는 제목을 지었다는 그의 소설이라면 꽤나 위트도 있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심산이었다. '하악하악'을 조금 읽었을 때, 46년생 할아버지인 것 치고는 고어를 쓰려는 기미도 별로 없어보여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것 같던데 안심하고 선택했다. 과연 술술 읽히고 특유한 공감각적 묘사로 '어쩜 이런 생각을 다할까'하고 사소한 부분에 감동을 실어 나르는 소설이다. 책 어느 한 쪽을 읽더라도 '이외수가 말하고 있는' 느낌을 생생히 전달한다. 분명 그만의 특유 문체가 읽는 사람에게 스토리 텔링을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작가라는 사람이 책 속에서 곧장 튀어나와 내 앞에 앉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직접 해주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너무 지나치게 그의 색이 강해서, 시점을 바꿔가며 서술을 해도 결국 한 사람이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준다. 분명 전진철의 입장에서 말해도 같은 화자가 말하는 것 같고,(물론 말투가) 다른 여러 등장 인물의 입장에서 말해도 꼭 그렇다. 여러 사람을 한 명씩 거치는 1인칭 시점에서 전지적 작가시점에 이르기까지 시점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것도 재미있다. 등장인물이 끊임없이 나오고 사건도 끊임없이 나오는데 스토리 라인까지 튼튼하여 나는 계속 감탄하였다. 전진철이 일본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의 진정한 천재 괴물 '요한'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런 천재적 괴물을 등장시켜 범죄 스토리 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전에는 몰랐는데 상당히 흡인력있는 소재였다. 물론 작가들의 역량에 따라 몰입도는 좌우되지만 말이다.

 

개성있는 문체의 작품을 만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했다. 알랭 드 보통도 특유의 시니컬한 철학적 문체가 있어서 좋아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한번 번역을 거친 상태에서 접하기 때문인지 그 개성이 완벽하게 느낄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에 비해 번역을 거칠 수 없는 우리나라 소설은 작가의 개성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 이게 바로 모국어 작품과 번역된 작품의 차이인가 보다. 또 다른 매력적인 문체를 가진 한국의 작가를 많이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접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