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철학*문사철100

철학 읽어주는 남자-탁석산

gowooni1 2008. 8. 28. 00:19

 

 

철학 읽어주는 남자 : 탁석산 : 명진출판사 :2008.05.02 : 293p

 

 

우리나라 사람들은 철학에 관심이 없는걸까, 아니면 알고는 싶은데 무슨말인지 알수가 없어서 관심을 포기하는걸까? 나는 일단 후자에 속했다. 몇번의 시도와 포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아주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그 관심이 자라나는 속도가 매우 더디었다. 그래도 한번 생긴 관심은 내 지속적인 노력으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만약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면 꽤나 도움이 될 듯하다.

 

철학에 크게 어떤 분야가 있는지, 철학의 대중적인 역사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왜 한국땅에서 철학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등등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문제들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제공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같은 고민을 했던 저자의 모습을 알게 되어 동질감도 느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철학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철학이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건 우리의 실생활을 바탕으로 생긴 철학이 아니라 외국에서 수입해 온 철학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이루어 온 철학은 중국에서 수입했고, 근현대의 철학은 서양에서 수입을 해왔으니 우리나라 사람들 생활과는 동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만의 철학을 일군 우리만의 철학자가 많이 없다는 현실이다. 아직도 중국의 철학을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철학자 행세를 하고, 독일철학을 공부하고 와서 지식인이라고 행세하는 사람들이 철학한다는 사람들의 현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우리 일반인은 그런 철학에게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저자는 이런 현실을 이렇게 비꼬아서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대에서 햄릿의 절규가 과연 통할까.'

 

이런 현실의 안타까움이 존재하지만, 철학의 기본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다. 철학에는 크게 4대분야라고 불릴만한 존재론(형이상학), 인식론, 논리학, 윤리학이 있으며,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형이상학의 발달이 주를 이루다가, 칸트를 계기로 인식론으로 방향이 흐르기 시작했다. 크게 이 두가지에서 많은 철학의 분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시 크게 나누자면, 프랑스 독일 철학은 현상학, 해석학, 해체주의 철학이 발달하였고, 영미철학은 언어 분석 철학, 프래그머티즘이 발달하였다. 프랑스 독일 철학과 영미철학의 차이점은 과학에 대한 철학의 위치를 어떻게 놓느냐로 볼 수 있는데, 영미철학은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철학을 생각하는 반면 프랑스 독일 철학은 과학과는 독립된 분야로 철학의 위치를 정립하고 있다. 영미철학의 프래그머티즘이란 흔히 실용주의를 말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잘못 번역된 언어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지식을 전달해주는 차원을 넘어서 저자가 말하려는 내용은 줄곧 하나다. 우리의 철학을 만들어야 한다. 이 땅에만 오롯이 존재하는 철학을 만들어야 철학이 재미가 있어지고, 그에 따른 철학 소비자도 많아진다. 철학은 교양이 아니라 전문지식인데 사람들은 수준 높은 교양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그것을 즐길 지력이 없는 사람들은 철학을 소비하지 않는다. 전문지식임을 인정하고 조금씩 배워서 철학이 소비되는 유통과정을 이 땅에 확립해야 한다. 뭐든 즐기려면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보드를 배우려면 비싼 강습료를 내면서 배워야 하고, 골프를 즐기려고 해도 강습을 받아야 한다. 하나못해 인터넷 게임을 하려고 해도 그것을 이겨서 즐거움을 느끼려면 전략을 세우고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 이런 방법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처음엔 어느정도 투자를 해서 즐길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놓으려는 자세를 대중들이 가지고 있다면 철학도 레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을 즐길 대중의 준비가 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발생한다. 철학을 즐길만한 무언가로, 그러니까 상상력과 논리, 재미있는 글솜씨로 멋진 한편의 글을 써 낼만한 철학자가 없다는 것. 없지는 않아도 그런 철학저술가가 이 땅에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땅에 우리만의 철학이 제대로 자라나려면 성장할만한 대중들의 욕구가 뒷받침되어야 하는것은 기본이고,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생산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경제원칙이 이곳에서도 요구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도 지력이 높은 대중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고 우매한 군중의 수준은 높아져 국민성으로도 선진국의 대열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이 책을 쓴 저자의 목적은 내 눈에는 이렇게 비친다.

 

'철학자들의 밥그릇이 위태로우니.

 대중들은 지적수준을 높여서 철학을 소비하고

 철학자들은 소비를 만족시키는 사회구조를 확립하여

 철학자들이 조금은 살 수 있을만한

 한국사회를 만들어 봄이 어떨까'

 

(물론 다른 목적도 있음. 궁금한 사람들은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