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천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

gowooni1 2008. 9. 1. 20:27

 

 

 

천 개의 찬란한 태양 : 할레드 호세이니 : 왕은철 역 : 현대문학 : 576p

 

소설이 그 시대의 생활상을 그대로 비춰 주는 거울 이라고는 하지만 이 소설 만큼 거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소설이 또 있을까?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소설이라는 허구 속에 진실을 잘 드러내어 주었다.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비참하고, 슬프고, 눈물이 났다. 576페이지라는 상당한 분량의 이 소설을, 줄줄 흐르는 눈물을 계속 훔쳐내며 마지막 한장까지 놓치지 않고 읽었다. 이 소설의 중독성 때문에 나는 하루를 꼬박 576페이지에 투자해야만 했다.

 

살짝 비뚤어진 나의 성격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에 대한 거부감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이 다 보았다는 영화는 왠지 보기 싫고, 이미 탑 베스트셀러인 책은 약간 인기가 시들해졌을 �야 읽는다. 이 책에 대한 호평이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지만 겉표지만 봐도 미국에선 대단한 호평을 받았겠구나 하는것 쯤은 바로 알 수 있을만큼 포장이 잘 되어 있다. 겉 표지는 거의 찬사로 뒤덮여 있다고나 할까. 내 가까운 친구의 찬사를 듣고 나서야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 묵직한 책은 섣불리 건들지 못하도록 강한 오우라를 뿜어 낸다. 그래도 용기 내어 읽기 시작했다. 내 친구의 소감을 먼저 듣고 읽기 시작했는데 내 친구 왈,

 

"재미는 있는데, 정말 한숨 밖에 안 나와."

 

나는 솔직히 한숨이 아니라 눈물 밖에 안 나왔다. 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불쌍한 삶을 보면서 누가 감히 한숨을 쉴 수 있는가. 한숨을 쉬는 것은 그녀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내 기준으로 한숨이란, 제 3자의 입장에서, 한발 뒤로 물러선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만큼 감정이입이 안되고 그들을 이해하겠다는 마음이 수동적이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직접 마리암이 되어서, 라일라가 되어서 그들의 삶 속에 파고 들어갔으며 그들이 슬플때 나도 슬퍼했고, 그들이 울을 때 나도 엉엉 울었으며, 그들이 혐오스러운 삶 속에서 해방되었을 때 나도 죽다 살아난 것처럼 해방된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을 통해, 아직도 이런 제 3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참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을 알게 되었으며, 이 미개한 문화를 하루 빨리 개화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문화를 미개하다는 생각은 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임은 잘 알지만, 적어도 이 여성들의 비인간적인 삶을 미개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여성들의 삶의 방식을 용납할 수가 없다. 할레드 호세이니가 이 책과 '연을 쫓는 아이'를 통해 쏟은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 이야기에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보호받아야 할 인권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하나의 소설이 이렇게 부당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폭로할 수 있다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불러 올수만 있다면 그것은 이미 소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 된다. 나만 봐도,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국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조금 외람된 이야기이나, 내가 현재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란 사실에 깊이 감사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자신보다 낮은 처지의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안위를 느낀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건 정말 다행인 것이다.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도 다행인데, 아프가니스탄 아니, 이슬람 문화권 아래에서 태어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내가 그 문화권에서 태어났다면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거라며 순응했을 수도 있지만,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달된 시대에 다른 문화권 여성들의 삶을 엿볼 기회가 전혀 없을리는 만무하고, 그럼 아마 나는 라일라처럼 온몸으로 시대에 저항하며 살았을 것 같다. 마리암의 삶을 보며 얼마나 답답했는지, 그녀의 삶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그러나 마리암같은 삶이 라일라 같은 삶보다 훨씬 많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임을 감안하면 다시한번 온몸이 떨린다. 내가 현재 이곳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고, 내게 주어진 자유를 한껏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주어진 환경 탓 같은 것은 절대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아주 사무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