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데미안-헤르만 헤세

gowooni1 2008. 8. 31. 21:19

 

 

 

데미안 : 헤르만 헤세 :

 

나는 종교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 집안은 불교이다. 외가도 불교이고 친가도 불교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가끔 절에 다니신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 집안 얘기고, 나는 아니다. 내게 있어 종교는 분명 알고 싶은 대상이긴 하지만 의지하고 싶은 대상은 아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기독교인들이 무섭다. 간혹 그들 중 신앙심은 너무 깊은데 이성적이지 못해 맹목적인 사람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나를 기독교화 시키려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독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기독교 학교여서 반드시 채플을 이수해야 했고 성경개론도 들어야 했다. 학점은 잘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종교에 관심이 꽤나 있는 편이어서 열심히 듣고 공부했다. 사람들에게 휩쓸려 교회도 몇번 나가곤 했다. 신앙을 하나 가지면 좋겠지 싶어서 믿으려고 노력도 해봤으나 비판적 사고력으로 살아온 내게는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성당에도 나가보았다. 아무도 없는 긴 의자에 앉아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기도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 분위기가 참 좋았다. 경건한 마음이 들고 숙연해지는 분위기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절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조용한 산사에 앉아 한껏 산란해진 마음을 가다듬고 있노라면 항상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다. 비록 한 가지에 믿음을 갖지는 못했지만, 나는 항상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방황하던 나약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나에게 수년 동안이나 마음의 바이블 역할을 담당해준 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중학교 시절 처음 읽은 데미안은 내게 무척 어려웠다. 그때의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의심을 한다. 중고등학교 권장독서에 데미안이 추천되어 있으면 '이걸 요즘 한국 중고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권장하는 걸까?'하고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이 입시위주 커리큘럼에서 독자적인 이해력을 가진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물론 헤세의 세계를 이해하는 똑똑한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생이 되어 다시 읽고서야 겨우 조금 이해했다. 사람은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의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학교 시절, 이것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다. 학교 도서관에서 수필 코너에 서성이고 있었는데 우연히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의 자전적 수필집이 눈에 띄었다. 김윤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런 사람이 이런 책도 냈네, 하면서 펼쳐 들었다. 사진이 월등하게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녀가 만든 곡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는, 일종의 화보같은 느낌이 강한 수필집이었다. 중간 중간 그녀의 삶에 대한 고찰, 그녀가 생각하는 세상, 그녀의 어린 시절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거기서 나는 그녀의 특이한 정신세계를 읽을 수 있었고, 그녀의 행동에 매혹되어 헤르만 헤세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던 것이다.

 

그녀는 중학교 시절, 헤르만 헤세에게 푹 빠졌단다. 그래서 그가 쓴 작품을 잔뜩 읽고 그 소설의 세계에 심취해서 살았단다. 그녀가 얼마나 헤세에게 심취해 있었는가 하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헤르만 헤세의 생일이 되면 혼자서 방에 촛불을 켜놓고 그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작품세계를 누군가는 온전히 이해하고 거기에서 헤어나질 못할 정도라고 하면, 그래서 혼자 생일 파티까지 치뤄줄 정도라고 하면 나도 그 작품세계를 알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 날로 집에 돌아와 데미안을 읽기 시작했다. 책꽂이 구석에 보이지도 않게 꽂여져 세월만 보내던 나의 데미안은 발행된 지 10년이 더 지나 종이 색이 누렇게 변한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런 건 별로 개의치 않았다. 과연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읽는 데미안은 매혹적이었다. 변색된 종이는 오랜 시간을 입증해 매혹적인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자신을 싱클레어와 동일시 하였다. 데미안을 그리워 하는, 데미안을 닮고 싶어하는 싱클레어로.

 

나의 정신적 지주는 막스 데미안이 되었다. 헤세는 어쩌면 그렇게 데미안을 이상적으로 묘사했는지! 이 세상에 데미안에 실제로 존재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정말로 데미안에게 푹 빠졌다. 데미안이 풍기는 그 분위기가 좋았고, 그 데미안을 너무 완벽하게 묘사한 헤세의 책이 좋았다. 정확히 나는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그 소설에 나오는 데미안을 좋아했던 것이다.

 

만약 데미안이 카인의 후예였다면, 나도 카인의 후예가 되고 싶었다. 싱클레어가 카인의 후예라는 훈장을 이마에 가지고 있어서 데미안이 그에게 다가간 것이라면, 나도 그 훈장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면 어디선가 카인의 후예인 그가 내게 다가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데미안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리고 싱클레어가 가지고 있었던 기독교에 대한 의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고 나는 그것에 기뻤다. 독실하고 어렸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사상에 겁을 먹었지만, 별로 독실하지 않고 어린 싱클레어(10살)보다 2배의 나이를 가졌던 나는 그저 기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이후로 데미안은 나만의 바이블이 되었다. 헤르만 헤세가 묘사한 데미안이라는 사람은 내 이상형이 되었다. 나는 데미안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진실로 항상 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데미안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나간다는 것은 죄악이야. 사람이란 마치 거북이처럼 자기 자신의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으면 안 돼'.

그리고 헤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인간의 생활은 자신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이고, 그길을 가는 시도이며 좁은 길의 암시이다.'

 

그리고 데미안에 나오는 인상 깊었던 구절들은 그때 사용했던 다이어리며, 지갑 속 곳곳에 써 붙여 놨다. 그 중 가장 많이 붙였고, 제일 자주 보았던 문구는 그 너무나도 유명한 문구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라고 한다.'

그리고 마음에 하나의 신념이 처음으로 세워진 이 날 이후로 나는 항상 알에서 나오려는 새처럼 살려고 노력했다.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더 발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과연 알을 깨뜨린 새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못 깨뜨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벌써 몇 번을 깨뜨렸지만 너무나 얇은 껍데기들만 여러번 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깨뜨려야 할 가장 두꺼운 껍질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영원한 인간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죽는 순간에야 깰 수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죽어서도 깨지 못할 세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에서 오는 좌절감을 극복하고, 항상 알을 깨려고 노력하려는 나를 믿는다. 그리고 이런 내 의지만큼은 확실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초 양차 대전에서 희생된 많은 독일 젊은이들. 그 젊은이들 품속에는 데미안이 한권씩 안겨 있었다고 한다. 세기의 불행속에서 정신의 근원을 찾아 방황하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은 반드시 한 줄기 희망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그런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이때부터 독일문학을 더 알고 싶다고 느꼈고 독일어를 공부해서 독일로 유학을 가고 싶었다. 물론 한때의 기분으로 끝났지만, 비록 원서가 아니더라도 잘 번역된 헤세의 다른 책들도 많이 읽고 싶다. 아직 못읽은 그의 책은 바로 유리알 유희이다. 헤세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안겨준 그 책. 유리알 유희를 구입한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방대하고 어려운 헤세의 세계에 아직 빠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젠 읽어봐도 될 듯 싶다. 헤세의 모든 작품과 정신을 집대성한 책, 유리알 유희는 비록 데미안 처럼 내 마음의 등불이 되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P.S 참, 내가 가지고 있는 데미안은 91년도에 발행한, 가격도 3500원인 책이다. 소담출판사에서 나온건데 아직 팔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발행년도와 가격이 적힌 책이 내 손이 아직도 있다는 것은 정말 뿌듯하다. 나는 아마 이 책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