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관심가는책200+

2008.07.07.월-사랑해 파리!-황성혜

gowooni1 2008. 7. 7. 23:18

내가 갑작스럽게 파리행을 결정하였을 때, 아무래도 내 들뜬 기분을 더욱 들뜨고 기대에 차도록 만드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행 전의 그런 책으로는, 이미 그 곳을 경험한 사람들의 책일 수 밖에 없다.

 

내가 파리에 관한 책을 서점에서 보고 있을 무렵, 몇 권의 책 속에서 고민을 하였다. 그 중에서도 더 잘 팔리는 책이 있었고, 더 보기 쉬운 책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보다 열살이 많은 한국 여자(이 여자분의 직업은 기자이다)가 쓴 책이 내 정서에 아무래도 더 맞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다른 책들은 작가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거나,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 작가들이었는데, 이 책은 내 공감대가 더 형성될 여지를 보이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생각도 하지 않고 골랐다. 그리고, 책을 산 그 자리에서 읽는 버릇을 꾹 참고 읽지 않았다. 12시간이나 날아가야 할 기내에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정하고 샀기 때문이다.

 

12시간동안 기내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Paris에 대한 기대는 한 층 더 깊어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지나친 상상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마냥 아름답고 황홀할 것만 같은 파리의 환상은, 책을 통해서나마 조금 눈을 뜰 수 있었다. 내가 10년을 넘게 가보고 싶던 도시이긴 하지만, 그 곳도 어차피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 사람이 사는 곳이 그저 동화처럼 아름다운 면만 있을 수는 없다는 점. 실제로, 내 상상속의 파리는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던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 파리의 맨얼굴을 조금 접하고, 현지에 도착하여 느끼는 괴리감을 조금은 없앨 수 있었다.

 

일단, 파리의 거리거리는, 깨끗하지 않다는 것. 이것의 의외였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의외라고 할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파리는 길거리가 너무 더럽기 때문에 처음으로 하이힐을 발명하였고, 너무 악취가 나서 발명된 게 향수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론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이 현실과 접해져서 새롭게 다가올 뿐이었다.

 

책을 통해서 몽마르뜨르 언덕근처의 피갈역 일대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 자신이 그곳에서 당했던 변을 책속에서 이야기 함으로써, 내가 그 지역을 걸을 때 조금은 조심하고 걸으면서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전혀 몰랐다면, 나는 아마 밤 늦은 시간에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상황을 맞이했을 수 있다.

 

음...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무슨, 미리 가지고 있는 기대를 조금은 져버리게 만든다거나 그런 작용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파리 사람들의 성향을 미리 파악할 수 있고, 그리하여 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길을 물어보면 될지도 파악할 수 있었고, 어디어디를 가면 더욱 그 작가가 매료된 파리라는 도시를 느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그리하여 내가 엉터리 영어로 무엇을 물어보아도 다 통하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얻을수 있었고^^, 프랑스 사람들이 영어와 관광객에게 불친절한 도시라는 것을 미리 상기시켜주어 마음의 대비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음의 대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딜 가든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사람들도 절대 웃는 얼굴을 그냥 저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웃으며 길을 묻거나 무엇을 물어볼 때면, 친절하게 영어로 설명해 주려는 파리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다소 무뚝뚝하고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었어도 알려주려고 노력하는게 내 눈에 보였으며, 정말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는 표정을 보이면 너무 너무 미안해 하기도 하였다. 혼자 외국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그런 나만 홀로 있다는 생각이 드는 땅에서는 사람들의 그 작은 호의 하나 하나도 너무나 감동적이고 눈물 겨워서, 세상은 어디든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 책은 작가가 파리에서 1년동안 유학생활을 하던 시간을 바탕으로 쓴 책이어서, 잠깐 여행을 할 뿐인 내가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을 하였고, 작가는 생활을 하였으니까. 잠깐 머무는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그곳에서 머물고 그 도시와 생사를 함께 하는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에는 파리의 황홀한 면과, 유쾌하지 못한 면이 함께 섞여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가처럼 파리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 내가 접한 파리는 내게 많이 친절하고 따뜻했나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곳을 떠나오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음에 올때는 여행이 아니라,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신분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